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명 Oct 13. 2020

작은 이가 하나 빠졌을 뿐인데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5월 중하순에 태어난 걸로 추청 되는 여명이는 이제 곧 묘생 5개월 차로 접어든다. 여명이처럼 길거리 캐스팅을 거친 고양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여명이도 태어난 날짜를 정확히는 모른다. 여명이를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치아 상태와 몸무게, 눈 색깔 등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선생님이 여명이는 태어난 지 아직 2달이 안되었으며,  5월 20일 정도를 전후해서 태어났을 거라고 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확한 생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었을 텐데, 처음에는 여명이가 정확히 몇개월된 아기 고양이인지 너무 궁금했다. 성장 과정에 따라 꼭 해줘야 할 일이 있을 텐데 나이를 몰라서 못해주게 될까봐 무섭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만춘이에게 여명이를 언제 낳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동물병원에 다니면서 여명이의 생일보다 예방 접종에는 여명이의 건강 상태와 몸무게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혹시 800g을 못 넘겼을까봐 조마조마했던 첫 번째 접종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마지막 접종을 마치고도 3주가 지나 항체 검사를 하러 갈 날이 되었다.

고양이 확대 현장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동물병원 가는 길 위에서,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여명이를 데리고 처음 주사를 맞으러 가던 생각이 났다. 가는 길 내내 작은 가방 안에서 맹수처럼 날뛰던 2개월령 여명이는 이제 말만 많은 수다냥이 되었다. 병원 가는 길 내내 심기가 불편해서 야옹야옹 볼멘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날뛰지는 않았다. 항체 검사를 하기 전에 몸무게를 쟀더니 2.7kg이었다. 3주 전보다 또 500g이 늘어난 걸 보고 혹시 너무 많이 나가는 건 아닌가 걱정했더니, 선생님이 여명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셔서 마음을 놨다. 처음 길에서 데려왔을 때 몸무게가 500g이었는데...매일 보니까 자란 줄도 모르겠더니 숫자로 보니까 정말 쑥쑥 자랐구나 싶었다.

채혈을 하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항체가 안 생겼을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항체가 안 생겨서 주사를 6번도 더 맞은 고양이들도 있다고 해서 더 불안했다. 여명이는 다른 항체들은 빵빵하게 생겼는데, 허피스 항체가 약하다고 했다. 길에서 데려올 때 허피스를 앓았던 영향인가 싶어서 또 마음이 짠했다. 여명이는 추가 접종을 하고 3주 뒤에 항체 경과를 보고 중성화 수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 첫 주사를 맞을 때는 어른 세 명이 붙잡아도 감당이 안될 만큼 사지를 버둥거리면서 싫어하던 여명이는 이제 제법 의젓해졌다. 선생님이 이렇게 얌전하게 주사 잘 맞는 고양이도 드물다고 칭찬하셔서 내가 다 뿌듯했다. 하지만 선생님, 모르시죠? 여명이 그날 집에 가서 3시간 넘게 삐져있었어요...

병원에서만 얌전한 고양이

병원 진료를 마치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제 날이 제법 선선했다. 여명이랑 가을에도 이 길을 함께 걷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물에 불린 사료를 먹던 여명이는 이제 못 먹는 게 없어졌고, 침대에도 못 올라가던 조무래기는 이제 못 올라가는 곳이 없는 치타로 자랐다. 여명이의 요즘 취미는 높은 곳에서 내 행동 관찰하기. 자고 일어나면 침대 헤드에서 '이제 정신이 드니?' 표정으로 쳐다보고, 평소에는 옷장 위에서 나를 관찰하다가 간식 꺼내는 소리가 들리면 2초 만에 뛰어 내려온다. 내 귀에는 똑같은 부스럭 소린데 희한하게 내 간식 소리와 자기 간식 소리를 구분한다.

눈나 뭐해?(오전) 눈나 뭐해?(오후)

여명이가 이렇게 커지고 활동 범위도 넓어졌지만, 매일 부대끼며 살아서 그런지 크고 있다는 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 배 위에서 잘 때 점점 묵직해지는 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몸무게를 재면 많이 컸구나 싶다가도, 집에 와서 보면 다시 아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명이의 성장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여명이와 사냥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여명이가 한참 날뛰었던 자리에 뭔가가 떨어져 있었다. 그걸 여명이와 거의 동시에 발견했고, 주워 먹으려고 뛰어오는 여명이 보다 내가 한 발 빨랐다. 뭔가 하고 살펴봤더니 놀랍게도 여명이 이빨이었다.

ㄴr는 ㄱr끔 이빨을 흘린ㄷr...⭐️

한참 나중일 줄 알았는데, 여명이의 이갈이가 이미 시작된 모양이었다. 어쩐지 요즘 내 손발을 그렇게 물고, 입냄새가 지독하더라니...그냥 예전보다 더 다양한 걸 먹기 시작해서 입냄새가 더 심한 줄 알았는데 이갈이 중이라서 그런 지옥의 냄새가 났구나. 빠진 이빨을 보니 이제 정말 여명이가 그 연령에 맞는 변화를 맞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마냥 아기 같은 여명이의 입안에서 유치가 하나씩 빠지고 영구치가 자란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이제 청소년 냥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이제 다시 어려질 수는 없을 테니, 여명이가 건치 미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옥의 냄새를 잘 견디면서 보필해야겠다.

이전 15화 마지막 접종 날 우리에게 일어난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