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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Nov 27. 2020

깔끔한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아무래도 여명이에게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여명이와 함께 살면서 매일 느끼는 건데, 고양이는 참 깔끔한 동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깔끔을 떠는 동물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명이가 오고 나서 나는 평소보다 청소에 시간을 더 많이 들이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과 퇴근한 후, 그리고 가끔은 자기 전에 마지막 청소를 한다. 하루에 청소를 적어도 두 번은 하는 셈이다. 엄마는 조그만 고양이가 그 좁은 방을 어지럽히면 또 얼마나 어지럽힌다고 유난을 떠냐고 하면서도, 묘하게 고소해하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것이 엄마가 잔소리를 수천번 해도 개선이 안되던 부분을 여명이가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바꾸고 말았기 때문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좁은 방에 살면서 반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되긴 했지만, 나는 천성이 맥시멀리스트다. 본가에 살 때는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바닥과 책상에 나뒹구는 책들 때문에 엄마 입에서 잔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심지어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취미까지 있어서, 내 방은 항상 황학동 같은 느낌이 있었다. 미니멀리스트에, 약간의 결벽증까지 있는 엄마에게 내 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괴로운 장소였을 거다 아마. 엄마가 제발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너도 똑같이 개고생(실제 워딩)해보라고 소리를 여러 차례 쳤었다. 나랑 똑같은 딸은 아니지만, 나보다 한술 더 뜨는 남의 아들을 주워와서 나는 엄마 마음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방은 만물상 같이 만들어놓고, 외출하기 전 코트에 묻은 먼지를 돌돌이로 떼어내는 나를 보고 엄마는 항상 괘씸해했다. 방은 거지꼴인데, 지 몸만 다듬는다는 힐난을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룰루랄라 외출을 하곤 했다. 그때 닫히는 현관문 뒤에서 분했을 엄마 마음을 이제 조금 알겠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도대체 뭘 했는지는 몰라도 물건이 다 자유분방하게 흩어져 있다. 내 방은 그 꼴을 만들어놓고, 애교를 한 10분 부리다가 그루밍을 시작하는 여명이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엄마가 했던 대사를 그대로 읊으면서 나는 살짝 소름이 끼쳤다. 너 같은 딸 낳으라는 엄마의 저주가 이런 식으로 실현이 되는 건가.

너저분하게 썼을지언정 내가  방에서 극도로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침대였다. 외출복은 물론이고 집안에서 입는 실내복도 아닌, 잠옷을 입어야만 올라갈  있는 곳이었다. 실내복으로 침대에 걸터앉기라도 하면 거품을 무는  때문에 아빠가 여러 차례 섭섭해하셨다. 너도 너처럼 왈왈 대는  낳으라는 소리를 아빠한테도 들었다. 이렇게 아빠를 섭섭하게 만들기까지 했던 청정구역 유지 노력은 여명이 앞에서 와르르 맨션이 되고 말았다. 여명이는 수시로 침대에 올라와서 우다다를 했다. 여명이 털로 이불 혼용률이 올라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발톱에 여기저기 걸려서 이불이라기보다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명이는  화장실에 갔다가  침대에서 한참 놀고 나서 캣타워로 올라가 그루밍을 했다. 순서를 바꿔서 그루밍을 하고 침대에 올라와주면 좋으련만, 방금 끙아를 모래에 파묻은  발로  침대를 자유롭게 누볐다.   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나는 그냥  체념했다. 베개만은 살려달라고 날마다 부탁하며 침대의 모래를 털어내며 살고 있다.

이불 속에 들어와서 자도 되니까 베개는 살려주라...

아마 화장실 모래로 벤토나이트를 쓰는 집은 다 그렇겠지만, 사막화 방지 매트를 아무리 깔고 어떤 조치를 취해도 집안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모래가 나온다. 정말 여기서도 나온다고? 싶은 곳에서도 모래가 나온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리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모래다. 화장실에서 곱게만 나와줘도 덜 튈 텐데 여명이는 야성미 넘치는 아이돌이 무대에 등장하듯 박력 있게 화장실에서 뛰어나온다. 모래가 정말 폭죽처럼 터지는 현장을 보면 내 속도 같이 터진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올라가서 발에 붙은 모래를 야무지게 털고, 매끈해진 발을 캣타워로 가서 그루밍한다. 이게 다 너 같은 딸 낳으라는 엄마아빠의 저주 때문인 것 같다.

깔끔은 떨지만, 깔끔하지는 못한(!) 여명이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해졌다. 예전에는 청소를 이렇게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청소를 한다. 아침잠 많은 내가 지각 위기일지언정 여명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주위에 튄 모래를 청소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여명이를 만나기 전보다 나는 아침에 적어도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청소는 두세배 더 하게 되었다. 여전히 괴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점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에 감사하기로 했다. 여명이로 인한 내 변화에 가장 고소해기뻐하는 사람은 우리 부모님이다. 이쯤 되면 여명이를 나한테 보낸 건 우리 부모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방은 내 알바아니고(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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