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 고양이의 땅콩을 수확하던 날
길에서 살던 여명이를 내가 멋대로 집고양이로 만들었다. 심지어 입양도 아닌 임보라는 애매한 방법으로. 얼마나 짧은 기간이었든 이미 실내 생활에 익숙해진 여명이는 이제 다시 밖으로 돌아가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임보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여명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게 잘한 일이었는지 이미 늦은 고민을 끝도 없이 했다. 여전히 잘한 일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대신 나는 합리화를 잘하게 되었다. 유독 태풍이 잦았던 여름 내내 그래도 여명이에게 비바람 피할 지붕은 마련해줬다고 흡족해했고, 날씨가 추워진 요즘은 난방이 들어오는 바닥에 녹아있는 여명이를 보며 추운 것보단 낫겠다고 혼자 만족했다. 그렇게 여명이는 점점 집고양이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종합 접종 세 차례와 추가 접종까지 마치고 이제 집고양이가 되는 마지막 관문인 중성화 수술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사실 나는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많은 책과 수의사 영상들을 통해 나와 여명이 모두에게 더 나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입양 홍보글에도 반드시 중성화 수술을 해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여명이는 다시 야외로 나가지 않을 것이고, 실내에서 인간과 함께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여명이에게 동의를 받을 수 없고, 수술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하는 건 좀 속상했다. 여명이는 영문도 모르고 모든 일을 겪을 텐데. 그렇게 조금 심란한 마음을 안고 여명이의 중성화 수술 날짜를 정했다.
수술 전에 본 여러 책에서 남성 고양이의 수술은 비교적 간단하다고 했다. 수술 절차 등을 봤을 때도 그래 보였다. 간단하다는 말보다 비교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어야 했다는 걸 수술 전 날 알았다. 수술 날짜를 정할 때 수의사 선생님은 여명이가 병원 방문 12시간 전부터 금식해야 하고, 2-3시간 전부터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하셨다. 단언컨대 여명이는 수술 전후 그 어떤 과정보다 저 금식이 빡셌을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수술 전날 밤 10시, 내가 밥그릇을 싹 치웠더니 여명이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노여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애써 못 본척하고 물그릇만 두 개를 놔주고 나는 모르는 척하고 잠을 잤다. 침대로 올라와서 몇 번 내 머리를 밀어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여명이도 포기하고 내 옆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은 지옥이었다. 여전히 밥그릇이 없는 걸 보고 여명이는 내 다리를 물기 시작했다. 내가 물그릇 두 개 중 하나를 치웠더니, 이제야 좀 말이 통한다 싶었는지 뒤에서 빨리 물 치우고 밥을 달라는 듯이 야옹야옹 난리가 났었다. 내가 나머지 물그릇까지 치웠더니 여명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잠깐 상황을 보던 여명이는 프라이드 록에서 포효하는 심바처럼 싱크대에서 목이 쉬어라 고함을 쳤다. 와 여명아, 조금만 더 떠들면 너 중성화하기 전에 너랑 나랑 길바닥으로 쫓겨나겠다. 그냥 아까처럼 누나 다리를 물면 안 되겠니...? 그렇게 애걸복걸하며 여명이를 이동장에 넣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오늘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뭘 못 먹여서 데려가는 내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여명이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는지, 평소와 똑같은 대기실이었는데도 노여운 목소리로 한참 보챘다. 같이 산지 5개월이 다돼가는데 저렇게 우는 건 처음 봤다. 선생님은 오늘의 수술 일정에 대해 잠시 설명해 주셨다. 우선 피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해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열은 없는지 체중은 안 모자라는지 등을 먼저 검사했는데, 여명이는 이제 3.7kg이었다. 분명히 7월 초에는 500g 될까 말까였는데. 정상 체중이냐고 물어봤더니 선생님은 잠깐 내일모레 방향을 보시다가, 지금은 성장기니까요. 라는 애매한 답을 하시고 피검사를 하러 얼른 여명이를 데려가셨다. 검사 결과는 좋았다. 모든 수치가 다 좋았고, 엑스레이 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었다. 여명이가 얌전하게 주사도 맞고, 정말 잘한다고 선생님이 한참 칭찬하셨다.
수술을 앞두고 여명이는 수액을 맞기 시작했고, 나는 무서운 말이 한가득 적힌 수술 동의서에 여명이 보호자 자격으로 서명을 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내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지는 걸 보신 선생님은 무서운 일이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셨다. 머리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부작용과 후유증이라는 걸 알아도, 아무리 확률이 낮은 일이라도 그게 여명이한테 일어나면 그건 100% 아닌가 싶어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수술을 마치고 나서도 바로 집에 갈 수는 없고, 마취가 깨는지 확인하고 수액을 또 맞은 뒤에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아침 11시에 도착했는데, 여명이는 아무리 일러도 저녁 6시에 병원을 떠날 수 있었다. 오래 걸리니까 수술 전후와 데리러 와야 할 시간에 전화를 주신다고 하셔서 나는 우선 집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수액을 맞는 여명이를 마지막으로 보러 갔다.
집에서는 이제 제법 큰 고양이 같더니,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는 여명이가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쫄보 여명이는 얼핏 봐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아유 이 쫄보야 어쩌고 하면서 여명이한테 잠깐 인사를 하고,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긴 뒤에 나는 병원을 나섰다. 병원에서 혼자 불안해하고 있을 여명이와 동의서에서 봤던 무서운 말들이 자꾸 생각나서 결국 나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에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괜히 수술한다고 했나. 혹시 마취에서 못 깨어나면 어쩌나. 수술이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오후 3시쯤 마취를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오후 4시가 안되어서 수술은 잘 끝났고 여명이도 잘 깨어났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갑자기 입맛이 돌아서 여명이를 보러 온 동생과 떡볶이를 신나게 먹었다.
오후 7시에 드디어 여명이가 집에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져서 나와 동생은 신나게 여명이를 데리러 갔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싶었는데, 오해였다. 우리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목에 보타이도 못 차고 있던 여명이가 열흘 동안 넥카라를 써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그럼 쟤 그루밍도 못하는건가요? 라고 바보 같은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이 그걸 못하게 하려고 씌우는 거니까요. 라고 상냥하게 알려주셨다. 소독약을 받고 이후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들은 후에 우리는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명이는 플라스틱 넥카라를 벗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일단 좀 씌워놨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는 도넛형 넥카라를 부랴부랴 주문했고, 동생은 행주로 넥카라를 만들었다.
행주 넥카라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다. 여명이는 한결 편해 보였다. 플라스틱 넥카라를 했을 때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들어갔는데, 활동을 아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다만 행주에도 단점은 있었는데, 여명이가 그루밍을 할 때마다 먼지를 먹어야 했고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뭔가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동생은 자기 집으로 떠나기 전에 행주 넥카라를 10개 정도 만들어주고 갔다. 도넛 넥카라가 올 때까지는 버텨주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도넛 넥카라는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았고, 행주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 이제 수술 부위가 잘 아물도록 나는 열흘 동안 여명이를 잘 케어해야 한다. 누나 때문에 모진 꼴을 당했다고 여명이가 잔뜩 삐져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명이는 수술 후에 애교가 아주 많아졌다. 평소에도 누나를 곧잘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수술 후에는 껌딱지라는 말이 고양이로 태어난 것 같았다. 잘 때도 넥카라 때문에 불편할 텐데 꼭 내 팔에 머리를 대고 잔다. 중성화를 거치면서 사이가 멀어질까봐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무사히 잘 아물어서, 다시 건강하게 온 집안을 치타처럼 뛰어다니면 좋겠다. 너무 활발하게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