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명 Dec 21. 2020

오지 않을 것 같던 입양 홍보의 끝

다 알고 있는 걸 나만 몰랐네

7월 초부터였으니 다섯 달이 조금 넘었다. 막 만났을 때는 여기저기 아파서 꼬질꼬질한 여명이였지만, 눈만 다 나으면 귀여워서 금방 입양을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여름까지는 괜찮았다. 가족을 들이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으니 시간이 좀 걸리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런데 날이 선선해지면서 살짝 조바심이 났다. 여명이는 점점 커가는데 입양 문의는 없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이 들어서 걱정이었다.

그 무렵에는 여명이가 입양 가고 나서 마음앓이를 하는 건 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서 여명이한테 좋은 가족이 생기기를 바라며 열심히 입양 홍보를 했다. 내가 여명이를 가족으로 들이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천재지변같이 여명이를 만나 임보를 시작했지만, 내 생각에 나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들일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여명이를 임보하면서 나는 수많은 고양이 보호단체에서 입양 조건을 왜 깐깐하게 제시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제시하는 여명이의 입양 조건도 점점 촘촘해졌다. 입양 전제 임보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여명이가 입양을 가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렇게 귀엽고 애교 많은 여명이를 알아봐 주는 예비 가족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여명이의 중성화 수술 때 깨달았다.

여명이가 수술 때문에 집을 비웠던 10시간 남짓, 내 손바닥만 한 원룸이 그렇게 넓을 수가 없었다. 여명이가 없는 동안 모처럼 책도 읽고 여명이가 있으면 못하는 활동을 좀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돌아왔는데, 여명이가 없는 동안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혔다. 막연히 여명이를 입양 보내고 나면 한동안 힘들겠지 생각했는데, 그 정도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수술이 다 끝나고 여명이를 데리러 갔을 때 나를 알아보고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엄청 징징거리며 하소연하는 여명이를 보니, 그동안 정이 든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데려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새로운 집에 가도 사랑 많이 받으며 임보 누나는 금방 잊고 곧 적응해서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여명이한테도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수술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수술 이후에 부쩍 애교도 더 많아져서 나한테 붙어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 여명이를 보면서 마음이 더 복잡했다.

수술 이후로 고민을 이어가던 나는 이번 주에 마음을 정했다. 이제 여명이 입양 홍보를 끝내고, 임시보호가 아닌 임종보호를 하기로 결정했다. 여명이한테 이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여명이를 못 보낼 것 같다. 아직도 내가 최선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명이한테는 좀 미안하다. 1인 가구인 것도, 집이 좁은 것도, 매일 회사에 가야 하는 것도. 이건 지금도 미안하고 앞으로도 미안할 예정이다. 다만, 여명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나에게는 좁게 느껴지는 집도, 캣타워와 창문해먹 그리고 온갖 가구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여명이에게는 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2층에, 창문도 2개라서 볕도 잘 드니까 아주 별로는 아니라고 혼자 정신 승리를 시작했다.

사실 여명이 입양 홍보를 끝내는 데는 여명이 1호 팬인 동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입양 문의만 와도 눈물버튼이 눌려서 나보다 더 심란해하던 동생은, 여명이가 입양을 가게 될까봐 반년 동안 마음을 졸였다. 중성화 수술 후에 내가 여명이 입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령 내가 외국에 가게 된다든지 그러면 안 되겠지만 더 먼 곳으로 가게 된다든지 하면 동생이 여명이를 키우기로 약속했다. 여명이를 아무 데도 안 보내고 데리고 있겠다는 얘기를 듣고 동생은 또 울었다고 했다. 이쯤 되면 동생이 입양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 500g 남짓이었던 여명이가 4kg까지 자라는 동안, 처음에는 넉넉했던 캣타워도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너덜너덜하다 못해 지옥에서 온 캣타워처럼 보여서, 임종보호 기념으로 새로운 캣타워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임시보호를 할 때와는 다른 부담과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여명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복닥복닥 지지고 볶으며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내가 행복한만큼 여명이도 행복하면 좋겠다.

 


이전 18화 세상에 쉬운 수술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