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샤'의 문을 지나 서울대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놀란 것은 생각보다 서울대를 다니는 학생 수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생각된 서울대의 생활이 '샤'의 문을 들어서자 결코 소수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일상처럼 보였다.
'서울대에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어?' 왠지 모를 억울함이 스쳐갔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특별함도 지니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학생 수가 많은 만큼 학교도 워낙 넓어 학교를 걸어 다니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학교 안을 도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겨우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에 갈 수 있었다. 서울대는 학교라기보다 하나의 큰 마을 같았고, 난 그저 큰 마을의 평범한 마을 주민일 뿐이었다.
마을에는 수족관이 있었다. 커다란 수족관 안을 많은 학생들이 분주히 돌아다닌다. 선배에게 물었다.
"왜 이 도서관을 '수족관'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기 봐봐... 다들 엎어져 자고 있잖아. 꾸벅꾸벅 졸며, 자며 있는 모습이 다들 물속의 물고기들 같아서... 그래서 수족관이라고 해. 히히. 몰랐어?"
수족관에는 인간 물고기들이 많았다. 언젠가 바다를 향해 나갈 희망을 품고 지느러미를 열심히 흔들며 내달리는 물고기들도 있고, 일단은 멍하니 그저 눈만 뻐끔거리고 있는 물고기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엎어져 자는 물고기들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수족관은 공부를 위한 공간도,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도 아니었다. 동아리 사람들이 잡아 놓은 테이블에 앉아 동아리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끄적여 놓은 '끄저기'라는 노트를 읽어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수족관은 '나'라는 물고기에게 물과 산소를 적절히 공급해 주며 세상에서 조금은 벗어나 쉴 수 있는 쉼터 정도였다.
가끔 수족관에 앉아서 나는 생각했다.
'나, 지금 왜 여기 있는 거지?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최고의 석학들의 수업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물론 정말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저서를 팔아먹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교수도 있었고, 아는 것은 많은데, 그걸 가르치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교수도 있었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휴강을 밥 먹듯 하는 교수도 있었다.
'난 무엇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수족관 금붕어처럼 뻐끔뻐끔 두 눈을 멍하니 뜨고 있을 때 동아리 사람들이 와서 어깨를 친다.
"팩 차러 가자."
수족관 계단을 내려가면 학관(학생회관)과 연결된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린 팩차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게 서울대생들의 팩차기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학관에서 천 원짜리 점심을 먹고, 커피 우유 하나를 사서 마신다. 손에 남은 빈 우유팩의 윗면을 정돈해 육면체로 만들면 여러 명이 모여 점심 후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공이 되었다.
아직은 서먹서먹한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팩을 발로 차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그 팩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 이어서 차는 것이다. 팩을 제때 받지 못하고 떨어뜨리면 그 사람은 팩을 이어받은 개수만큼 푸시업을 하곤 했다. 나처럼 운동신경이 둔해 받아 치치 못하고 떨어뜨리는 여학생에게는 흑기사가 나타나 대신 푸시업을 해주기도 했다. 그 덕에 남학생들의 등판은 점점 넓어졌고, 서먹서먹하던 사이도 화기애애한 사이로 변해갔다. 수족관에서 멍 때리던 물고기들은 이렇게 가끔 수족관 밖을 나와 그렇게 팩차기로 체력을 보강시켜 다시 수족관으로 들어가곤 했다.
입학하기 전, 서울대에서 기대했던 것들은 막상 현실로 부딪히며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훌륭한 교수의 강의도, 대단한 인재들과의 만남도 결코 내 인생에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얹어주진 못했다. 수업을 기대하며 학교를 가는 날보다 팩차기를 기대하며 학교를 가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인간 물고기들이 뻐끔거리고 있는 이곳 수족관에서 난 또 한마리의 물고기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