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제공하는 교육에 길들여지고 최적화된, 그 완벽함의 추구에 길들여진 희생양들이었다. 자신이 최고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것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음으로 억지로 자신의 완벽함을 이루어가고 있었고, 자신의 불완점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우연히 대원외고에서 같은 반에 있었던,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남학생을 중국어 교양강좌에서 만나게 되었다. 난 대원외고에서 중국어과에 있었다. 3개월 만에 다시 귀향하는 바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중국어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대학에서 교양강좌로 중국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남학생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중국어를 분명 잘할 텐데도 중국어 기초반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좋은 학점을 손쉽게 얻기 위해 한 학기 동안 시간 낭비를 하며 중국어 기초 수업을 듣기로 선택한 것 같았다. 그에겐 자신이 들이는 시간과 학비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시간과 학비를 낭비해서라도 자신의 완벽에 더 완벽을 가할 학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 남학생뿐이 아니었다. 자신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보다는 재미는 없지만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교양수업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학점이 4점을 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일찌감치 드롭시키고 손쉽게 학점을 딸 수 있는 수업을 다시 신청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만들어낸 좋은 학점과, 자신을 둘러싼 완벽함은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북한 사람들이 하는 공연을 보면 '대단하다'라고 느끼기보다 실수 하나 없는 그들의 완벽함에 슬퍼지곤 했다. 저 상태가 되도록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육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서커스의 동물들처럼, 완벽한 공연을 위해 채찍질 그 이상의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너무나 완벽한 공연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완벽함 이면의 아픔이 느껴져 보는 내내 입이 썼다.
국민학교 때 가을운동회가 다가오면 운동회에 들뜨는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운동회 때 선보일 부채춤 연습을 하느라 매일 방과 후 남아서 연습에 연습을 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운동회의 즐거움이 반감되기도 했다. 연습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 잘 따라오지 못하고 실수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호통과 매질이 이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완벽한 군무를 선보이는 것이 선생님의 목표였고, 아이들은 그 군무를 위해 호통과 매를 채찍처럼 맞아야 했다.
그렇게 커왔던 내가 이곳 호주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다.
아이는 기타를 치는 밴드부에 들었고,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속한 기타 밴드만 공연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규모의 음악회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연주를 선보이는 공연이었다. 저학년의 공연도 아니고 고학년들의 공연이었기에 내심 상당히 기대감을 가지고 공연을 보러 갔다. 나를 포함해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해 있었고, 심지어 시의원까지 참석한 자리였다.
기대감에 들떠 공연을 보는데 난 너무 놀라 내가 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자도 맞지 않고, 삑사리는 기본이었다. 공연이라고 하기엔 재롱잔치보다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준의 공연을 한다고 부모들을 다 초청했다고? 애들 연습이나 좀 더 시켜서 좀 잘할 때 공연을 하지... 선생님은 이런 공연을 선보이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들이 공연을 마치고 내려와서 칭찬을 바라는 눈망울로
"엄마, 공연 어땠어요?"
라고 물었을 때, 난 난감했다. 물론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는 했지만 기어코 나는 뒷말을 붙여버렸다.
"근데 애들이 어쩜 그렇게 실수가 많니? 연습을 제대로 못 했나 봐."
그때 아이들 지도를 맡았던 선생님이 다가왔다. 아들 칭찬을 하면서 공연을 잘 보았냐고 물어온다.
난감한 상황의 2차전. 난 그냥 잘 들었다고만 하고 속에 있는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아이를 뉴질랜드에서 키운 나의 친구는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클래식 음악회를 가게 되었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실수가 난무하는 공연이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의 친구는 지도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명색이 공연인데 애들이 어쩜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해요? 한국하고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한국에선 이렇게 많은 손님들 앞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애들이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실수 없이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거든요. 애들 연습을 좀 더 시켜서 공연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친구의 이런 말에 선생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고 한다.
"음... 이건 학교 학생들의 공연이잖아요. 프로페셔널 공연이 아니라고요. 그런 공연 보고 싶으면 돈 주고 티켓사서 그런 공연 보면 되실 것 같은데요. 학생들은 완벽한 공연을 선보이려고 공연하는 게 아니에요. 무대에 서는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 이런 공연을 하는 거죠. 지금 아이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걸 해 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린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가르쳐 주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지 완벽한 공연을 하는 프로를 키우려는 게 아니에요."
순간 친구는 낯이 달아오르고 무척이나 난처했다고 한다.
다분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이란 걸 한다면 실수는 없어야 한다고 철저히 교육받은 한국 사람으로서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겠지만,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경험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곳의 교육방식을 맞닥뜨렸을 때 난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북한 사람들을 보며 로봇이 군무를 추는 것 같다고 느꼈던 느낌을 이곳 호주 사람들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한국 사람들을 통해 느낄지도 모르겠다.
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다.
실수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큰 자산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뒤늦게야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며 배울 수 있었다.
서울대에서 수학하는 동안 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나에게 주어졌고, 그 완벽함을 추구하는 경주자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난 그곳에서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넘어지면 경주를 쉽게도 포기하는 많은 이들을 지켜봐야 했다. 넘어지기 전까지 뛰어온 거리는 무시한 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뛰려 하는 이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은 완벽함은 언제나 불안해 보였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입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