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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r 29. 2023

서울대생이 임용고시에 떨어지면

축축한 안개가 낀 겨울, 난 사막을 가로지르는 노숙자가 된 것 같았다. 내 인생 최초의 굵직한 실패 경험이었다. 당연히 합격일 줄 알았던 임용고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난 하숙집 위층에 사는 언니가 사다 준 초콜릿을 빈 속에 먹고 차분히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던 탓이라 둘러대고 싶었지만, 내가 시험에 떨어진 것은 그저 준비가 안된 채로 시험을 보고 합격을 바랐던 나의 오만방자함 때문이었다.


'서울대도 붙었는데, 사법고시도 아닌 임용고시 정도를 설마 내가 떨어지겠어?'


난 '서울대'라는 간판을 등에 업고 기고만장함을 두른 다른 서울대생들과 실은 별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었다. 서울대 안에서 서울대생들을 보며 난 저들과 같지 않다고, 난 저들과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것 자체부터가 나의 교만함이었다. 난 어쩔 수 없는 서울대생이었다.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무의식 속에선 내가 서울대생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쩌면 상당히 나 자신을 대단히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무의식이 형성되는 데에는 좀처럼 큰 좌절과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한 나의 인생 탓도 있다.


나처럼 실패 경험이 적은 인생을 산 사람은 실패에 매우 취약하다. 실패가 닥쳤을 때, 실패를 인정하며 나를 돌아보기보다 실패에 패닉 하며 실패를 부정한다. 마치 여우와 신포도에 나오는 여우처럼 '이 길은 내가 그렇게까지 가고 싶었던 길은 아니야.'라고 실패를 외면한다.


나 역시 임용고시에 떨어졌을 때 그랬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돌아보기보다는,

'교사가 되는 길이 꼭 임용고시뿐인가. 사립학교에 지원해 교사가 되면 되지. 아니, 꼭 교사가 되어야 하나? 다른 대기업에 지원하면 되지.'

라며 실패를 외면할 방법을 찾았다. 임용고시 불합격의 당혹스러운 자국을 마음에서 지우기 위해, 난 서둘러 이곳저곳 대기업에 지원했고, 대기업 중 한 곳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왠지 내가 가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난 쑤셔 넣어둔 다른 방안을 꺼내 들었다. 사립학교의 임용공고문이 올라오면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지원을 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곳이 압구정동에 있는 H고등학교였다. 사립학교 교사로 일하는 일은 국가 임용고시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인맥과 연줄이 있어야 하고, 학연이 있어야 겨우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겉으로는 임용 공고문을 띄워 공평해 보이지만 실은 로비가 존재하고 은밀하게 협상이 이루어지는 그런 자리이다.


다행히 나는 현란한 로비를 하지 않고서도 '서울대'라는 간판 덕에, 그리고 서울대 선배가 그 학교에 있었던 탓에, 쉽게도 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다. '서울대'라는 프리패스를 처음 사회에서 경험한 나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서울대'라는 간판이 나를 또 다른 기회의 문으로 이끌고 있다. 이 프리패스를 버릴 용기가 없다. 어쩌면 이런 프리패스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H고등학교는 나에게 또 다른 대원외고였다. 7년 전, 대원외고에서 학생으로 느꼈던 이질감을 난 H고등학교에서 교사로서 느껴야 했다. 대원외고에서처럼, 재학생들 대부분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나와 학생들의 사이의 거리는 교사와 학생의 거리감이 아니라, 재력을 타고난 금수저들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초라한 흙수저 교사로서의 거리감이었다.


이 세상은 내가 다 헤아리지도 못할 여러 관계망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난 그 거미줄 위에서 언제 잡혀 먹힐지 모를 먹잇감이었다. 바람이 살랑이는 안락한 해먹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실은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이었고, 난 먹잇감이 된 줄도 모르고 거미줄 위에서 살랑이는 바람을 즐기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대원외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H고등학교에서도 난 이방인이었다. 아무도 날 이방인 취급하진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이방인이 되기로 자처하였다. 몸은 그곳에 속해 있었어도 여전히 어울릴 수 없는 그들과의 거리감은 나를 그곳에 오래도록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겉으로 안락하게 보이는 그 자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난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7년 전 세 달을 겨우 다니고 대원외고를 떠났던 것처럼 난 그곳을 뜨고 싶었다. 제 값을 치르고 공평한 기회의 문으로 들어가 내 자리를 찾고 싶었다.


난 다시 임용고시 준비를 했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로 주어진 국가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다. 바람에 살랑이는 해먹 위에서 안락함을 즐기는 느낌은 없지만, 난 딱딱하고 우직한 나무 의자가 내가 앉아야 할 자리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경험한 두 번의 내 세상이 아닌 세상, 속해있었지만 이방인으로서만 살아야 했던 세상, 대원외고, H고등학교를 경험하면서 난 내가 온전히 일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을 찾아가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했다고 본다. 달아나기만 했는데 무슨 방법을 찾았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난 달아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세상을 찾으러 떠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나'로서 아름다울 수 있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찾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결국 난 나를 찾았고, 껍데기를 벗어던질 수 있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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