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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r 06. 2023

서울대 전액 장학금

학과 공부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전공을 잘못 선택해서라기보다는 내가 기대한 배움이 주어지지 못하는 데 대한 갈증과 회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학점을 잘 받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장학금.

하숙비에 생활비까지 부쳐주시는 부모님에게 학비 부담까지 얹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과외를 하면서 하숙비와 생활비는 어느 정도 보탤 요량이었지만, 국립대라고 하더라도 한 학기 등록금은 큰돈이었다.


공부가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해야 되는 건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부실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난 열심히 정도까진 아니고 성실히 했다.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수업을 빠지지도 않았고, 꼬박꼬박 과제를 제때 제출했더니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잘나서 장학금을 받았다기보다는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놀아준(?) 덕에 쉽게도 혜택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같은 과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 너 알아. 너 대원외고 다녔었지?"

대원외고. 아... 생각하기 싫은 그때의 기억이 돌부리에 걸린 듯, 솟구쳐 오른다.

"응... 나 겨우 3개월 밖에 안 다녔는데. 나 다시 안동으로 내려갔거든."

"그래, 알아. 너 대원외고에서 엄청 유명했는데 말이야. 힘들게 들어온 대원외고를 때려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간 아이로."

"그래?"

"너네 담임이 '만두'였잖아. 그 만두가 전 학년을 돌며 니 얘기를 했어. 사실 너에 대해 악담을 퍼부었지. 대원외고도 그렇게 쉽게 포기한 학생이 뭐 제대로 할 게 없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 아이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놀랍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니가 서울대 다니고 있을 줄 만두는 생각도 못하겠지? 히히..."


대원외고 이야기를 하자면, 씁쓸한 토 냄새가 아직도 난다. 시골에서 어렵살이 상경해 다니게 된 대원외고. 상계동 사는 고모집에 얹혀살며 중곡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난 토를 했다. 시골 살며 버스를 오래 타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그 긴 거리를 매연을 맡으며 학교를 통학한다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몸이 고되니 공부가 잘 될리가 없었다. 대원외고에서 난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었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많은 재학생들에게서 느끼는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 괴리감은 나를 더욱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힘들게 입학한 대원외고였지만, 나에겐 숨 쉴 수 있는 삶이 필요했다. 대원외고 안에서는 내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난 안동으로 다시 내려갔다. '만두'라고 불리는 담임은 나의 귀향을 몹시도 어처구니없어했지만, 난 그런 '만두'의 심사까지 헤아릴 형편이 안되었다. 난 살아야 했다.


그렇게 대원외고를 떠나고 나를 향한 비웃음이 전교생 사이에 떠돌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난 대원외고에서 영어과, 영어과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니게 된 것이다.


"너 이번에 전액 장학금 받았다면서... 대단하다."

약간의 부러움의 눈빛을 띈 그녀는

'난 정말 힘들게 이곳까지 왔는데, 너는 좀 날로 먹은 듯하다.'라는 표정이었다. 대원외고 출신도 아닌 시골 학교 출신이 서울대까지 들어와 장학금을 타니 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비쳤다.

마치 서울대 출신도 아니면서 사회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단한 지방대 출신의 인재들을 서울대 출신인 기존 특권층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빛이라고나 할까.


그녀에게서 대원외고에서 떠돌던 나의 뒷담화 이야기를 들은 후, 난 오기가 생겨서라도 더 열심히 학과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흥미도 없는 학과 공부를 장학금만을 위해 열심히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공부는 점점 흥미가 없어졌고, 나는 삶의 다른 중요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놓치고 있었던 나의 삶을 위한 이유를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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