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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Jan 04. 2023

교육 공장의 최상품, 서울대 합격!?

하얗던 눈이 내리다 녹다를 반복하다 나뭇가지 위에서 때 묻은 회색으로 변해가던 겨울, 3년을 다니던 학교 입구엔 그렇게 플래카드가 붙었었다. 내 이름 석 자가 '서울대'라는 석 자 옆에 나란히 붙어 경축 사이에 쏙 끼어 있었다. 3년을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플래카드 위에 나부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자부심은 몇 주 동안 학교 입구에 걸린 플래 카드가 사라지듯, 아주 짧은 순간, 사라져 버렸다.


25년이 지난 지금, 2022년도 수능 만점자가 유퀴즈에 나와 인터뷰를 한다.

만점. 대단한 점수다. 분명 성실함의 증표는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터뷰에서 오래전 부끄러웠던 나를 다시 만났다.

내가 서울대에 합격했던 그날의 '나'나, 수능 만점을 받고 인터뷰하고 있는 25년의 시간 차를 둔 그들이나, 무언가를 많이 이미 놓쳐버린 삶의 구멍이 보인다.


유재석이 질문한다.

"취미는 뭡니까?"

만점자 중 한 학생이 말한다.

"취미는 딱히 없는데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랑 아이엠그라운드를 하는 게 낙이었어요."

......

"수능이 끝났는데, 혹시 책도 읽으십니까?"

"아니요, 저는 책을 안 읽어요."

"저는 책을 안 좋아해서."


나 역시 그랬다. 공부에 나의 모든 시간을 바치느라 안생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 구멍을 대면할 때면, 공부가 재미있다고 자신을 속이며 그렇게 살아왔다. 공부 이외의 것에 시간을 시간을 조금도 내어줄 수 없을 만큼 공부가 취미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았었다.


"어떻게 만점을 받을 수 있었나요?"

"계속 반복해서 문제를 풀었습니다."


25년 전의 내가 또 보인다. 시험에 내가 길들여질 때까지 풀고 또 풀었다. 시험 치는 기계가 되기를 자처하고 질문만 보아도 답을 척척 찾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슬펐다.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앎'에 대한 기쁨을 발견하기도 전에 한국의 학생들은 시험 유형에 자신을 길들여야 한다.

취미와, 낭만과, 삶이 주는 탐구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한 채, '시험'이라는 제도에 적합한 인간으로 생산되고자 그들은 자신을 길들여야 한다.


서울대를 들어간 사람들 중 분명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뭐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의 교육제도가 원하는 '시험'이라는 제도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나의 삶에 함수와 방정식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은 함수와 방정식 문제에 길들여져 능숙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런 지식들을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무조건 머리에 넣고 보아야 한다. 이유를 알기 전에 입력부터 해야 하는, '교육'이란 미명하에 제공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우린 순응해야지만 서울대에 가기가 용이해진다.


사실 난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부터 틀려 먹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그 중요한 이유를 누구도 잘 설명해 주지 않았다.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1등을 했을 때 누리는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열심히 해서 잘하고 보면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것이 어른들이 제시한 이유들이었다.

난 배움 그 자체가 좋아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공부를 잘했을 때, 이 사회가 제공하는 시스템에서 뭔가 강자 쪽에 설 수 있음이 매력적이었다.


어쩌다 초등학교 때 난 전 과목 올 백을 맞았다.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삶에서 다른 사람의 주목을 쉽게도 받고 부러움을 받는 짜릿한 경험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그 짜릿함은 마약처럼 나를 더 높은 곳을 향하게, 더 큰 짜릿함을 맛보도록 나를 내몰고, 또 내몰았고, 나는 그 짜릿함을 위해 공부에 길들여지는 인간이 되고 있었다.


공장에서 무결점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찍어내고, 또 찍어내고, 거르고 걸러 완성되는 생산품처럼, 난 한국 교육이라는 공장에서 제법 쓸만한 제품, 아니 ’한국교육' 공장에 최적화된 최상품이 되기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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