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대학을 안 가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였더라면 이곳 호주에서보다는 큰 이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잘했다. ATAR라는 호주 졸업시험에서 전국 상위 0.75프로 안에 들 정도의 시험 성적을 받았고, 대학교에서는 전액 장학금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들은 친구들이 모두 대학을 들어갈 때, 자신은 잠시 쉬어야겠다고 했다.
이곳 호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일 년 동안 쉼의 기간을 갖는 아이들이 상당 있다. 그 기간을 'Gap year' 라고 한다.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기 보다는 인생의 'Gap'을 의도적으로 두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여행을 하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도 한다.
아들은 자신이 공부를 잘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학에 가서 또다시 공부를 할 생각을 하니, 영 대학 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머리를 쓰는 일보다 차라리 몸을 쓰는 일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다분히 한국적인 마인드를 장착한 나는 속으로,
'이 놈아, 니 놈 성적이면 의대도 가고, 원하는 곳은 다 갈 수 있을 텐데, 그걸 그렇게 쉽게 버리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이내 나 자신에 다시 반문했다.
'너 자신을 봐라. 좋은 대학 나왔다고 삶이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잖아.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아들 길은 방해하지 말자.' 라며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은 1년의 기간을 탐색과 휴식의 기간으로 정해두었다. 성적이 좋았기에 과외선생으로 좋은 스펙을 갖게 되어 과외를 해서 용돈을 벌었고, 전기기사 조수로 따라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전기 쪽 일을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부터 아들은 한 달에 40만 원을 꼬박꼬박 나에게 주며, 이젠 자기도 돈을 버니 생활비를 내겠다고 했다. 17살의 아들은 내가 그 나이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여름이 유난히도 더운 이곳 퀸즐랜드에서 아들은 전기기사를 따라 천정에도 올라가고, 지붕에도 올라가고, 땅을 무작정 파는 삽질도 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땀에 흠뻑 쩔어서 왔다. 그런 아들에게
'너 정말 육체노동이 적성에 맞는 거 맞아?'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나의 섣부른 판단이 아이의 결정을 방해할까 봐 말을 삼키곤 했다. 그런 엄마의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아들은 묻지도 않은 말을 마치 들었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은 편해요. 성취감도 있고요. 애들 과외하는 게 훨씬 편하고 쉽긴 한데, 전기 일하는 게 더 보람있어요."
과외를 하는 것보다 고생은 몇 배로 하고, 돈은 반 밖에 벌지 못해도 아들은 몸을 쓰고 온 날이 더 좋다고 했다. 아들에게는 대졸자가 되느냐, 고졸자가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저 지금 내가 보람있다고 느끼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다였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선생님의 기대에 맞추어,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나의 기대에 맞추어 서울대를 입학했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따위는 지나친 사치였다. 하지만 그때의 난 나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를 맞추기 위한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고, 난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흔한 대학생들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건축학개론' 책 대신 안전모와 공구들을 허리춤에 두르고 있다. 대학생 새내기들의 하얗고 맑은 얼굴 대신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꺼메진 얼굴이다. 말끔한 청바지에 티셔츠 대신 얼룩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내가 대학생 때는 가지지 못했던 방황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아들은 나와는 달리 '나'로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