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한 잔이 말아주는 추억 여행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 마주친 향이나 맛이 시공을 넘어 다른 곳으로 날 데려가 줄 때가 있어. 친척들과 함께한 이번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밤, 즐거웠던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들른 식당에서 주문한 올드 패션드가 그랬지. 첫 향은 오렌지가 들어가 색달랐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독한 위스키의 목 넘김은 익숙했어. 그 목 넘김이 날, 지난 미국 여행 라스베가스에서 올드 패션드를 만났던 순간으로 날려 보냈지.
베이컨이 올라간 베가스의 올드 패션드는 특히 목 넘김이 찌르듯 독했지. 왁자지껄하던 실내 분위기, 마시고 취하라는 듯 아낌없이 위스키를 부어주던 바텐더, 들뜬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 섞여 희미하게 들리는 슬롯머신 소리까지. 올드 패션드 한 모금에 난, 바닷바람 부는 실외 테이블에 앉아 지중해 특유의 시트러스 한 칵테일 향을 즐기면서도 추억 속의 라스베가스 바 속에 있었어.
'재밌네'라는 생각으로 한 모금 더 넘긴 올드 패션드는 날, 더 먼 추억 속 익선동으로 보내더라? 리드를 열자 날아가던 연기의 향이 베여 스모키 하던 올드 패션드였지. 한옥 느낌이 물씬 풍기던 좁은 골목, 어둑한 실내 바 분위기와 데이트를 즐기던 옆자리의 커플들, 그곳에서 이민을 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지인들까지. 칵테일 한 잔에 난 크레타와 베가스, 그리고 익선동을 함께 느끼고 있었어.
"영감"을 불러일으키겠다고 꿈꾸던 익선동의 나, 영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던 베가스의 나, 그리고 영감을 놓아 보내고 "존중"을 받아들인 크레타의 내가 있었지.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울컥하기도 해. 하지만 이제와 내가 그때의 내게 전할 수 있는 말은 짧은 한 마디야. "고생했다."
코 끝을 적시는 오렌지 향과 함께 남은 올드 패션드를 입 안에 털어 넣으며 추억 속의 내게 안녕을 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