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석현 Apr 08. 2024

사(死)의 찬미

스무 살의 너에게


결국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는다는 것은 생명 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다. 즉, 생(生)의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보통 광범위하게 느껴진다. 종말(終末)은 계속된 일이나 현상의 맨 끝을 말한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지구의 종말이나 생각해봤지, 생의 종말을 생각하고 사는 이는 드물다. 보통 죽음이라고 하지 종말이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종말은 죽음보다 뭔가 더 거창한 느낌이다. 종말은 마무리를 의미한다.     


죽음은 끝이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모두 사라진다. 모두가 죽음 앞에 엄숙하다. 죽음은 슬프고도 무겁다. 가벼운 죽음도 하찮은 죽음도 없다. 또한 우리는 죽음 앞에 관대하다. 고인의 살아생전 죗값은 죽음으로 완전히 소멸한다. 더 잘해주지 못했고 더 용서하지 못했음을 그가 떠난 후 비로소 느끼고 후회한다. 고인에게 전하는 산자의 마지막 선물이다.     


2024년 봄날 고등학교 동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30년 동안 유일하게 연락이 끊이지 않고 인연을 이어온 친구다. 오후 일정으로 인해 오전에 연락받은 후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운전해가는 도중에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경험상 비가 배웅하는 장례식은 슬픔이 배가 된다. 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30년 내내 서로에게 마음을 다 드러내며 밝은 모습과 짜증스러운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던 사이다. 망자(亡者)의 죽음도 안타까웠거니와 친구가 감당할 슬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30km가 채 안 되었지만 이날따라 무척 멀게 느껴졌다. 눈물을 훔치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안쪽에서 나를 발견한 친구는 한 손을 들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고인에게 예를 갖추고 상주들과 인사를 한 후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를 마주하고 술을 한잔 받으며 한마디 건넸다.     


"속상하재?"

"괜찮다"

"... 괜찮기는"     


딱히 긴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절로 눈물이 났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감춰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인의 죽음보다 아버지를 잃은 친구의 상실감이 앞서 전해졌기에 마음이 더 아파왔다. 눈가가 뜨거웠다. 친구 앞에서 난생처음 흘리는 눈물이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으며 말을 건넸다.     


"암만 그래도 부모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재?"

"그렇지 뭐"     


둘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없이 있었다.     


"운구는?"

"내일 아침에 온나."

"몇 시고?"

"10시"

"알았다."     


마침 친구의 부인과 세 딸이 자리에 왔고 아이들을 핑계 삼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차려진 밥상을 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오른다. 산 사람은 사는 법이다.     


다음 날 아침. 전날 선배와의 술자리 후유증으로 인해 피곤한 심신을 온천 목욕으로 달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인에게 마지막 제사를 지낸 후 말없이 운구하고 장지로 이동해 말없이 고인을 땅에 묻었다. 장례식 도중 간간이 들려오는 주위의 곡소리가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80년 넘게 살아온 인생에 비해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중간중간 고인의 가족들은 눈물을 쏟았고, 곁에 함께 한 지인들은 먼 산만 바라보았다. 산 중턱 굽이굽이 수많은 묘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 땅에는 산 사람보다 사자(死者)가 더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의 땅에 얼마 안 되는 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공원묘지 아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 친구가 한마디 건넨다.     


"고맙다."

"그래. 욕봤다. 연락하자."     


장례식 며칠 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들(아이들)하고 밥 한번 묵자."

"언제?"

"다음 주?"

"그래. 약속 잡을게."     


그렇게 나는 다음 주 약속을 잡았다.     


<공지> *** 부친상 후 식사 자리

일시: 2024-04-**일 19시

장소: ****

참석인원: 5명     


부친상에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마치려면 아직 한 주 이상 남았다. 고인을 떠나보낸 후에도 그렇게 산자의 시간은 계속된다.     


젊디젊은 나이에 벌써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밤에 눈감는 것을 죽음이라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는 것을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산다면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가 없다. 어떻게 태어난 삶인데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미래를 대비(對備)하며 살아간다고 하나 사실은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작은 효용을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걸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어리석음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 산자의 말만 허공에 맴돈다. 살아생전 얼마나 아팠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 어찌 되었고, 어찌 살았다느니 하는 말들이 고인을 배웅하는 장례식장에서야 산자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고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한 자리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다. 고인이 살아생전 우리는 그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삶에 지대(至大)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사람들은 남의 삶에 말들은 많지만 정작 관심은 없다.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크고도 다양하다. 죽음 이후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척이나 많음을 우리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접한 후에야 비로소 느낀다. 시간의 유한함과 인연의 소중함, 그리고 삶의 의미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 숙연해지고 죽음 앞에 성숙해진다. 지금은 주위의 죽음을 바라보며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현재를 보다 후회 없이 살아야 할 시간이다.          

 


#사색의향기 #독서포럼 #광명하늘소풍 #부산독서모임 #부산하늘소풍 #아들과아버지의시간 #부부의품격 #박석현 #박석현작가 #박석현브런치 #독서모임 #광명독서모임 #광명독서토론 #광명저자특강 #부산독서모임 #부산독서토론 #부산저자특강 #아버지의편지 #다산편지 #자기계발 #자녀교육 #좋은글 #좋은글귀 #다산 #다산의마지막편지 #뼈때리는말 #뼈때리는이야기 #스무살의너에게




※ 제 브런치의 모든 글은 생각이 날 때마다 내용을 조금씩 윤문(潤文)하여 완성된 글로 만들어 나갑니다. 초안 발행 이후 반복 수정하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니 시간이 지날수록 읽기가 수월하실 겁니다. 하여 초안은 '오탈자'와 '문맥'이 맞지 않는 글이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구하겠습니다. 아울러 글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글입니다. 글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독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겸허한 마음으로 활발히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로 인해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자 박석현 드림>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BeCKb


<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문학 에세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588808


<부부의 품격>

완성된 부부가 되기 위한 필독서

부부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얻는 인생의 지혜를 담은 《부부의 품격》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425909


<다산의 마지막 편지>

‘다산 정약용의 편지’와 함께 시작하는 마음공부!

https://naver.me/Ix7P3khe


SNS 채널을 통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isu9912


인스타그램

http://www.instagram.com/charlespark7


유튜브

https://www.youtube.com/@prsnim


이전 19화 종교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