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자기만의 동력
유독 긴 가을을 보냈다. 붉은 단풍 위로 두꺼운 눈이 쌓이니 이상하다. 올해 봄, 가을에 두 번 핀 밤꽃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덕분이라고 하기에 마뜩잖지만, 금세 가버리던 가을이 느린 걸음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니, 나로서는 호사를 누릴 수밖에 없다. 절로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 앞에서, 나도 절로 그리되고 싶다는 도둑 심보를 가져본다.
일과 벌이가 주는 안정감과 직장이라는 단체의 소속감이 있다. 요즈음 안정감과 소속감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집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생겨 감회가 새로운 중에, 나를 증명해 내려는 욕구와 조바심이 눈치 없이 문을 두드린다. 꿈꾸던 환경이 갖춰졌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쓸모를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다. 물러날 곳은 없다.
처음 백수가 되었다. 교직 생활에 이어 곧바로 원하던 곳에서 운동을 가르칠 수 있었기에, 팽팽한 고무줄의 탄성을 느끼며 춤추듯 일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일의 자유도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가르치는 일 외에도 브랜딩 관련 실무를 하며 흥미와 성취감을 느꼈다. 배우는 것도 설레는 일도 많았던 3년의 경험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는 든든한 비계가 되어주었다.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에, 홍천집이 준공되는 시기와 맞물려 퇴사했다. 그간 배운 운동 기술로 곧바로 돈을 벌고도 싶었지만, 이 시기만큼은 숙고하며 깊이를 더할 때라고 생각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6개월 동안 하고 싶고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있다. 글쓰기와 달리기. 나를 잘 쓰기 위함이다. 삶에서 만족과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나라는 존재를 잘 알고 건강하게 쓸 때이다. 여기에는 두 가 지 욕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면의 성장을 원하는 욕구와 체력적 건강에 대한 욕구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과 몸을 단련하는 일이 균형을 이룰 때, 잘 살고 있다는 안도와 만족을 느낀다. 일주일을 두고 보았을 때 차분히 무언갈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빠져버린다면? 생의 중요한 본질을 구멍 난 주머니 사이로 흘려보내며 쫓기듯 사는 느낌이 든다.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에너지가 금방 소진되고 생각에 붙들려 갑갑하다. 적절한 운동이야말로 정직한 건강 보험이기에, 운동을 미루면 미래가 흔들린다.
그러나 말이 쉽지, 꾸준히 읽고 쓰고 운동하는 일이 여간 어려 운 게 아니다.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일인데 왜 그리 어려운지. 어렵기 때문에 해내고 싶은 거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바삐 일할 때는 종종 놓아버렸던 일이다. 소속에서 오는 안정감과 사회적 인정은 앞선 두 가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자 존감을 지켜준다. 지금은 오롯이 나와 직면하는 일로 자존해야 한다. 이것 다음에 '나의 일이 있다고 믿으며 단련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철학 사상가이면서 무술가인 우치다 다쓰루, 작가 이면서도 러너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가까운 본보기다. 왜 그들이 글과 운동을 병행하는지, 놓지 않고 삶에 끈질기게 데려 가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물론, 글과 운동이 스며들어 나와 하나가 되는 지경이 왔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제1의 이정표 삼아 사랑하고 일하고 이직하고 집 짓고 퇴사하고 글 쓴다. 운 좋게도 나의 좋은 면을 바라봐 주는 짝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럴수록 홀로 잘 서고 싶다. 그래 야만 나도 온전한 지지를 보낼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제껏 살 아온 중에 가장 제대로 된 홀로서기에 돌입한 건지도 모르겠다.
교사를 그만둘 무렵, 마음에 콕 박혔던 문구가 지금껏 내 안에 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문장이다.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생활에서 불리 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폐 속에서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 (중략)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달리러 나가는 일, 글이 갈 곳을 만들어 꾸준히 쓰는 일, 다음 문을 스스로 찾아 여는 일. 모두 자기만의 동력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로 살고 싶은 사람, 진정 홀로서기를 원하는 사람, 언젠가 이루고 싶은 나만의 꿈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같은 고민이 있으리라.
실업급여가 끝나는 내년부터는 돈벌이를 구할 것이다. 내가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생활비가 필요하다. 이직이나 퇴사가 경력 단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하고 싶은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촘촘히 수를 놓는 것이 내 몫이다. 이왕이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연결해 볼 작 정이다.
그래서 쓸모를 찾았냐고? 아니, 마땅한 쓸모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쓸모는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구해야 한다. 원한다고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하다고 원하는 때에 '짜잔' 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늘 그래왔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할 수 있는 것을 계 속하기로 했다. 낡은 생각에 붙들리지 않고 묵묵히 가다 보면, 재촉하지 않아도 다음이 온다. 원하던 바를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신뢰와 안정감을 주고, 튼튼한 자아에 자신이 소속되기를 바라며 계속 걷기로 한다.
두 달간 두 선생님께 에세이 수업을 들었다. 용기를 내 브런치 스토리에 응모했고 당분간 글이 갈 곳을 마련하게 되었다. 5개 월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 꼬박 스무 편의 에세이를 썼다.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신춘문예에 몇 편의 시를 써서 보냈다. 5년 전 쓰다만 동화 초고를 들춰보고, 이어 쓸 결심을 한다. 독립 출판물 제작 과정이 궁금하여, 책 만들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와 직면하는 시간이다. 텅 빈 공책이든, 커서가 깜빡이는 문서창이든. 그 앞에 앉아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때로 는 반짝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안 좋은 감정이 고여있지 않게 고랑을 내는 일이기도 하며, 좋은 일을 오래 추억하기 위해 장독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나만의 동력에 불붙일 훌륭한 땔감이 되어주리라 생각하며 쓴다.
올여름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 3회를 목표로 아침 달리기를 하고 있다. 목표치를 모두 지키진 못했으나 주 1~2회는 빼놓지 않고 지금껏 달렸다. 1분 달리고 2분 걷기를 반복하며 30분 운동하는 일도 숨이 가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10분 달리고 3분 쉬고 다시 10분 달리는 일이 가뿐하다. 머지않아, 30분을 쭉 이 어 달릴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가 싹튼다.
달리기는 공기와 중력을 거슬러 뛰어오르고 나아가는 행위다. 행위 자체로 힘차다. 시간이 쌓일수록 심폐 능력과 근육이 건강해진다. 정신도 덩달아 맑아진다. 달리기는 주변 시선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된다. 앞으로 나아가면 서 자존감을 갉아먹는 요소들을 떨쳐낸다. 끝내 꾸준히 하고 말리라.
이 모든 실천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매일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도처에 있다. 행복은 나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되어준다. 그 단서를 따라서 걸어본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촘촘하고 넉넉한 동심원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계속해 보는 거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