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며] "네가 원한다면 망설일 필요 없어."
지금까지의 글은 집 짓는 이야기가 아니다. 꼭 집 지어 살 필요도 없다. 그저 나답게 삶을 지어가기를 소망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러쿵저러쿵 타인의 말에 망설이기보다, 해보는 쪽에 서기까지 참 많은 시간 흔들렸다. 조건 맞춰 선보라는 말, 다 버티며 사는 거라는 말, 이직해도 다 똑같을 거란 말, 나도 다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는 말, 사서 고생하지 말란 말. 나를 걱정하고 위해서 하는 말일 텐데, 이상하게 단 한 번도 안정과 위로를 느낀 적 없다. 더 혼란스러웠을 뿐. 많은 이들이 안전한다고 하는 노선에 합류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한 채 불안했다.
요지경 세상 속, 많은 말들이 상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이끄는 가치관의 7할은 아픈 말에서 피어났다. 아프고 불편한 말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자꾸 되새김질했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알게 된 것이 있다. 말들은 '내가 나를 몰라 줄 때, 스스로조차 설득하지 못했을 때' 깊이, 오래 남았다. 왜 불편한지, 왜 불안한지, 왜 위로받지 못하는지, 왜 동의하지 못하는지. 밖을 향해 던진 '왜'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왔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언제까지 낭만 좇아 살 거냐는 지인의 농 섞인 말'을 처음 듣던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아,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이루지 못할 헛바람처럼 들렸구나. 나라는 존재가 공기 중에 풀썩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몇 날 밤을 곱씹어 보고서야,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낭만이란 걸 깨달았다. 좋았어. 낭만을 좇으며 살자. 마음이 가리키는 데로 걸어보자. 내 인생이야.
사람들은 본인이 어떤 선택을 하거나,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들려준다. 그저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무수한 조언들 사이로 내 마음을 읽으면 그만이었다. 그 단순한 걸 못해서 오래 풀풀 날아다녔다.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중에 짝을 만났다. 진실한 사랑이 아니면 결혼 따위 안 할 거라며 떵떵거리던 중에, 계획에 없던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그는 내가 오랫동안 간절히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응원을 귀신같이 해주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는데, 그의 응원이 있으니 생각지 못했던 세상으로도 날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네가 원하면' 망설일 필요 없어. '네가 원하면' 도전해 봐. '네가 원하면' 가자! 네가 진실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 응원에 힘입어 사랑도 낭만도 일상도 '내가 원하면'을 따라 걸었다. 혼자 먹은 마음보다 백배 천배는 더 단단한 마음이 되었다. 더듬더듬 걷던 걸음을 껑충껑충 뛰게 해 주었다.
단단한 마음이 준비되었다고 꿈에 이르는 일이 매번 쉬운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꿈일수록 어렵다. 험난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믿는 마음과 타인의 응원이 있다면, 과정마다 낭만이 가득할 것이다. 단단한 응원을 받아보니, 다른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모두에게 희망, 낭만, 꿈의 가능성을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 단 한 마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썼다. 내 삶의 과정 중 한 장면이 누군가에게 시원한 바람으로 불었으면. 잊었던 꿈을 다시 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놓으려 했던 낭만을 다시 품게 되었으면. 다른 삶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고민해 보았으면. 어쩌다 이 글을 보았을 당신에게 응원으로 가닿고 싶다.
혹여나 낭만과 꿈을 좇아 도전하고 실망하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늘 과정 중에 있으니까. 근사한 산을 오르거나 신나는 여행 중이라면, 기대와 달리 마주 하는 해프닝은 크게 중요치 않다. 되레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주기도 한다. 현재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 앞에 있는지, 무엇을 경험하고 배울지, 어디에 가닿을지를 떠올려보면 우리의 걱정과 실망은 참 귀엽다. 삶이라는 여행 중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바라보는 곳이 어디인지 잃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은 끝내 좋은 길로 가고 있으니, 당신이 원한다면 망설일 필요 없습니다.
2024년 겨울
서울 베이스캠프, 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