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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Nov 25. 2024

서울을 떠나 찾은 우리집 (2)

special. 무아경 랜선 집들이


  홍천의 아침 기온이 영하권에 접어들었다. 땅 가까이 누운 식물에 서리가 하얗게 앉았다. 희끗하게 샌 머리카락 같다. 나는 지금 여름과 가을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복닥 복닥 마음이 종종 시끄럽고 쉽게 의지가 불타는 걸 보면 그래도 아직 여름인가 싶다. 여름이고 싶다. 겁 없이 무성하게 자라야지. 그리고 가을에는 다채롭게 세상을 물들이고 잎을 떨굴 때는 미련 하나 없어야지. 서리가 내릴 즈음, 단단히 월동준비를 하고 용감무쌍하게 겨울을 맞고 싶어. 코끝에 스치는 찬 기운이 단전 아래 뜨거운 마음을 자극한다. 


  눈 돌리면 보이는 게 자연이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지고 어제까지 붉게 물든 산에 시선이 뺏겼는데 오늘은 서리 앉은 땅을 내려본다.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 보고 있자니 그 모습에 쉽게 나를 비추게 된다. 거울 없이 나를 보는 셈이다. 가을에 심은 식물의 월동준비를 하고 봄을 기다리며 파종할 꽃씨를 미리 사두었다. 영하 30도까지 노지월동이 가능한 식물이라고 하여 심긴 했지만, 정말 봄까지 살아남을지는 지나 봐야 안다. 겨울에 조심스레 파종한 씨앗이 얼마나 싹틀지도 미지수다. 미리 보기가 가능하다면 참 좋으련만. 마음이 자꾸 봄에 갔다 온다. 봄은 재촉한다고 오는 게 아닌데 말이다. 겨울에는 그저 겨울을 잘 보내야 한다. 눈앞의 변화에 집중하며 자연의 숨소리를 느껴야 하겠다. 처음 맞는 홍천의 겨울, 잘 부탁해! 그리고 나에게도 나를 잘 부탁할게! 재촉하지 않을 테니(재촉해도 소용없으니), 지금 나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보련다.


/ 초보 주택살이 백수의 전원일기(?)






  오늘은 서울로 볼일을 보러 나왔습니다. 거리가 멀어지니 한 걸음 물러나 대상을 보게 되는 효과가 있네요. 그래서 괜히 아침에 만난 홍천 풍경과 감상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글에 이어 무아경 2층 공간을 소개합니다. 통으로 탁 트인 1층과 달리 2층은 용도에 따라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나뉩니다. 1층은 영감을 얻고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면 2층은 씻고 자고 쉬는 아늑한 휴식의 공간입니다. 1층은 여백과 확장이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느껴지게, 2층은 필요를 충족하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밀도 높게 구성되었습니다.  


사진 김진철


  2층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쉼의 공간

  천창이 비추는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게스트룸과 안방이 있습니다. 게스트룸은 어쩌다 손님이 묵고 갈 때를 대비하여 아늑하게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어요. 3평 남짓의 작은 방이지만 높은 천고와 북쪽으로 크게 난 창 덕분에 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창밖으로 나무와 하늘만 보이거든요. 특히 여름에는 서쪽으로 큰 창이 열린 다른 공간에 비해 시원해서 좋습니다. 북향 방의 매력이죠. 게스트는 아니지만 저도 종종 낮잠을 자러 이 방을 찾는 이유입니다.

 

  게스트룸을 지나 코너를 돌면 역시 서쪽으로 뚫린 유리문으로 먼 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는 근사한 자연 액자입니다. 동시에 왼쪽으로는 블랙 우드의 묵직한 문이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안방 문입니다. 흰 벽에 흰 문으로 시공한 비밀 공간 같은 게스트룸과 달리, 안방문은 노출 콘크리트 벽면과 맞닿아있기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 블랙 우드를 선택했습니다. 안방 역시 잠만 자는 공간으로 침대만 쏙 넣어두었어요. 서쪽으로 난 통창은 포기 못했습니다. 벽 하나가 창이 되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암막 커튼은 굳이 하지 않았어요. 밤에도 불빛이 가득한 도시와 달리 해가 지면 달빛 별빛뿐인 이 동네에서는 자연스럽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생활하게 되거든요. 해 떠있는 시간에 바지런히 바깥 일 하고 해 지면 하루를 정리하고 눈을 붙여야 해요. 그러니 햇살을 방안으로 은은하게 들이는 리넨 커튼 하나면 충분합니다. 눈 뜨면 얼른 커튼부터 열고 싶어 잠을 쫓고 몸을 일으키게 된답니다. 자연 리듬에 따르는 일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습니다.



사진 김진철


  드레스룸, 욕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디자인과 편리와 낭만

  집 짓기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생활에 꼭 맞는 공간 설계라고 생각해요. 특히 수납을 위한 공간을 깔끔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안방에서 욕실로 이어진 긴 복도 공간에는 드레스룸과 실내 창고, 세탁기, 건조기, 화장대가 모두 모여있습니다. 용도가 다양하지만 구조는 심플합니다. 왼쪽은 창고와 세탁기, 오른쪽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고 넉넉하게 짜인 붙박이장. 색상은 모두 블랙으로 통일했습니다. 콘크리트와 블랙우드의 매력에 푹 빠졌거든요. 편리와 심플. 두 가지가 모두 잘 반영된 공간입니다.

  욕실은 우리의 낭만이 듬뿍 담겼습니다. 북쪽으로 난 창으로 참나무숲이 가득 들어옵니다. 욕조에 앉아 창을 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초록 잎을 느낄 수 있지요. 한겨울 설경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반신욕을 함께 누릴 날을 기대 중입니다.



사진 김진철


  옥상

  긴 일직선의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자연을 담다 

  난간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무척 근사해요. 건물의 모서리가 긋는 선이 자연을 만나니 풍경을 담는 프레임이 됩니다. 난간으로부터 서너 발자국 떨어져 풍경을 바라보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웃집 지붕은 가려지고 우람한 산중턱부터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하늘만이 눈에 담겨요. 멍하니 서서 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장소랍니다. 건축 현장 소장님도 시공 중에 옥상 풍경 너무 좋다고 자주 말씀하시고는 했어요. 캐노피도 설치하고 의자도 두면 어떻겠냐며 옥상 활용에 대해 여러 조언을 해주셨지만, 현재로서는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이 좋아 비워둔 상태입니다. 아침에는 물안개, 산안개를 감상하고 밤에는 별을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이대로 좋습니다.




  지금까지 무아경 곳곳의 공간 소개를 마쳤으니, 다시 소소한 전원생활 이야기를 써내려 가보겠습니다. 공간과 자연과 그 속에서 발견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요. 


  P.S. 지난달, 우연한 기회로 EBS <건축탐구 집>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멋진 지인분께서 저희 공간을 건축탐구 작가님께 추천하신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건축탐구 집>은 여러모로 고마운 프로그램이라서 오래 고민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매 회 소개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공간 해석을 보며 저희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거든요. 다른 누군가도 저희가 출연한 편을 보고 본인이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일말의 힌트를 얻게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했고, 멋진 프로그램에 무아경이 담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공간 소개는 김호민 소장님께서 해주셨어요.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자연을 아낌없이 담는 멋진 프레임을 만든 것 같다'는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갓 지어진 집이라 세월의 흔적과 깊이가 묻어나진 않을지 몰라도, 그 단순함과 여백 덕에 멋진 풍경이 듬뿍 담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완연한 가을에 청춘을 곁들인... 방송은 11월 12일 <서울을 떠나 청춘의 집을 짓다> 편에 소개되었답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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