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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경 Nov 18. 2024

서울을 떠나 찾은 우리집 (1)

special. 홍천집 랜선집들이


  지금까지 홍천집에서 보고 들은 풍경과 관찰한 내면을 썼다면, 이번에는 집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집 짓기를 꿈꾸는 분들의 공간 구성에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라며 써 볼게요. 글을 읽고 언젠가 집 짓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면 여행겸 맛집 투어 겸 방방곡곡 땅 구경 먼저 다녀보시기를 적극 권합니다. 어떤 땅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사심 가득 집 소개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감성과 소망을 펼쳐낸 홍천집 이름은 ‘무아경’입니다. 공들여 지은 공간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짝과 저의 별명을 숫자로 표현하면 38이와 92가 되기에, 한동안은 이름 없이 3892 project라고 불렸습니다. ‘무아경’은 준공 막바지, 한창 이름 짓기에 골몰하던 우리에게 지인이 골라준 이름이에요. ‘무()’가 포함되었으면, 세 글자였으면, 보금자리 겸 작업실로 쓰일 공간이라서 집을 의미하는 ‘당()’이나 ‘가()’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니, 유심히 듣던 지인이 “그럼, ‘무아경’ 어때요?” 하기에 “오! 정말 좋아요!” 했더랬죠.


  잠시 나를 잊고 자연과 공간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집이라 '무아경'이 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아경은 불교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나 자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숭고한 종교적 깨달음에 비견할 것은 아니지만, 무아경에 머무는 동안 일상적인 생각과 인식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울타리, 무채색의 벽과 투명하고 넓은 창이 그리는 모호한 경계,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렌즈, 산 중턱에 내려앉은 안개와 닮은 콘크리트 덩어리. 이 공간에서는 때때로 자연이나 공간이 사람을 압도합니다. 잠시라도 사회 속 자아를 잊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습니다. 잊음으로써, 비움으로써 새로운 시선과 영감이 밀려오길 원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바란 건 환기가 잘 되는 공간이었어요.





  무아경 곳곳을 살펴볼까요?


사진 김진철

  외관

  직육면체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놓은 모습 

  연애 초반, 그러니까 벌써 5~6년 전 데이트할 때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종종 눈물 흘린 적 있어요. 그 눈물이 신호탄이 된 걸까요? 자연을 가득 품은 집을 짓게 된 것 말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집이 서로를 밝혀주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시간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찬란한 자연을 들이려면 건물은 되려 단순하고 여백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채색의 직육면체 콘크리트 덩어리는 자연의 색을 돋보이게 합니다. 가을의 오색찬란 단풍 곁에서 집은 더 담백해집니다. 이른 아침, 강산에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르면 집은 배경으로 물러서고요. 한겨울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면 또 어떤 조화를 보여줄까 궁금해집니다. (눈 치울 걱정은 눈썰매 타고 눈 사람 만들 기대로 살짝 무마해 봅니다.)  



  전경

  통창이어야 했던 이유

  서쪽으로 난 18m의 통창. 집짓기 전까지만 해도 남서향을 최고로 생각했지만, 이 땅에서 산이 펼쳐지고 강이 흐르는 전경을 고려했을 때 단연코 서향이었습니다. 3m로 널찍하게 낸 데크에서 앞을 바라보면 우람한 산등성이가 좌에서 우로 호를 그리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떨구면 힘차게 굽이치는 홍천강이 흐르고요. 맑은 날씨에 적당한 구름까지 있는 날이면 멋진 노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밤이면 먹색의 산이 하늘과 경계를 나누며 호랑이 등처럼 누워있어요. 아침에는 집 뒤쪽으로 난 창에서 은은한 해가 들지만 정오를 지나면 해는 점차 서쪽 창 안을 구석구석 비춥니다. 비스듬히 들어온 해는 거실을 통과해서 깊이 중정까지 닿습니다. 통창 덕에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로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지요.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TV는 두지 말자고 했는데, 전경을 바라보니 TV를 둬도 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김진철

  1층 

  상자 하나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소년의 놀이터

  1층은 매우 단순한 구조입니다. 직육면체 상자 모양으로 시원하게 뚫었어요. 용도상으로 거실과 부엌이 있지만 경계가 모호합니다. 미술관, 카페, 작업실 같다는 말을 손님으로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1층을 원하는 대로 이름 지어 부르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짝은 20대에 접어들어 자취방을 구할 때도 반듯한 네모로 뻥 뚫린 공간이 필수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3평 남짓한 작은 원룸에 월세로 살 때도 공간을 도화지 삼아 본인 감성을 그려내던 짝은, 어렸을 적 네모난 상자 하나만 있으면 그 안에 종이와 이쑤시개로 만든 가구를 배치하며 하루 종일 재밌게 놀았다고 해요. 그러니 무아경 1층은 그의 놀이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는 3~4년 동안 차곡차곡 수집해 온 가구를 풀어놓고 여기저기 배치해 보더니, 드디어 이 녀석들이 있어야 할 곳에 왔다며 좋아합니다. 몇 년 뒤에는 이 네모난 공간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사진 김진철

  중정

  하나의 계절보다 사계절을 누릴래

  현관문을 열면 실내가 아닌 중정을 먼저 만날 수 있습니다. 실외지만 실내 같은 공간이에요. 동글동글 강자갈이 깔린 중앙 정원을 넘어 북쪽으로 뚫린 직사각형 프레임으로는 참나무숲이 들어옵니다. 등 뒤로 국유림, 머리 위로 하늘, 북쪽으로는 참나무숲과 소담한 음지 정원. 시선을 붙잡는 곳이 사방에 있습니다. 서쪽 전경으로 18m 창이 있었다면, 중정을 바라보고는 12m의 창이 있어요. 집 내부의 커튼을 모두 열면 중정에서 집을 통과하여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건축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창호지만(ㅠㅠ), 통창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매일 한답니다. 중정 역시 설계 초반에 수영장이 들어설 공간이었지만 정원으로 두길 잘했습니다. 올여름, 홍천강과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 가느라 바빴거든요. 물놀이는 자연 수영장에서, 중정에서는 무아경의 사계절을 누릴 작정입니다.





  

  여기까지 1층 공간입니다. 2층은 1층에 비해 아담한 공간이 용도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2층 소개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해볼게요. 꿈꾸듯 말하던 바가 설계 도면에 그려지고 집이라는 실물이 되어 생활할 수 있는 지금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자취방에 처음으로 제 돈 주고 식물을 들였을 때처럼, 짝이랑 10평 남짓 작은 원룸에 합가(?)했을 때처럼, 함께 아기자기 취향 듬뿍 집을 꾸밀 때처럼 꼭 그렇게 설렙니다. 다만, 이제 정말 우리 집이네요. 설렘과 함께 잘 꾸려나가고 싶은 책임이 따라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 손때가 타면 어떤 모습이 될지, 그때의 우리 시선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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