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는 주말에 있을 엄마의 생신을 미리 축하하기 위해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했다.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서 언니 부부가 소고기를 듬뿍 넣어 미역국도 끓이고 버섯 전, 계란말이를 준비했다. 역시 K-장녀라 그런지 나와는 다르다. 나는 불효녀라 딱히 무언갈 해줘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대신 언니가 케이크만 사 오라고 했다. 그래, 케이크라도 사가면 양심에 조금 덜 찔릴 테다. 회사 근처 케이크 집을 찾아봤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신라호텔 출신 제빵사의 가게를 찾았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 신라호텔 출신 제빵사라니. 실패할 일이 없는 조합이다. 45,000원의 거금이었다. 먹어보니 비싼 가격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대신 과식으로 인해 오늘 점심까지 속이 얹혔다.
갓비움이라는 음료를 먹고 속을 비워내려고 했다. 하지만 효과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장기를 비워낸 느낌이다. 음료 제목을 GOD DAMN 비움으로 바꿔도 괜찮을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았던 전 남자 친구의 소식을 친구에게서 들었을 때나, 그 소식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한 나쁜 기분을 싹 비워내야지.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그를 차단했다. 이제야 비로소 완벽한 작별을 한 느낌이다.
오늘은 온종일 눈이 펑펑 내린다. 말 그대로 정말 펑펑. 모니터에서 잠시 눈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다. 폭설 때문에 도로가 마비되었다, 117년 만에 11월의 폭설이다 등등 떠드는 뉴스는 많지만 나는 신난 강아지처럼 즐겁기만 하다. 여름 좋아 인간인데 눈이 왔다고 또 겨울 좋아 인간으로 변모했다. 오죽하면 점심도 건너뛰고 한 시간 동안 산책만 했다.
퇴근길엔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야겠다. 비워낸 만큼 홀가분한 기분으로 털레털레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