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난성에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환생 마을’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했다고 믿는다. 그곳 사람들은 이들을 ‘재생인’이라고 부른다. 집단 환생이 일어난 이 동네 사람들은 전생의 가족들을 찾아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하며, 전생에 자신을 살해한 사람과 한동네에 살기도 한다.
나는 전생을 믿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이생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생이라고 믿고 산다. 어릴 때 연예인들의 전생을 알아보는 최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최면에 걸린 그들은 이생에서 경험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신비로운 이야기다. 사람들이 전생을 찾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환생 마을의 재생인들은 과거를 기억하듯, 전생을 기억하고 산다. 어떤 종류의 기억이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다. 기억에는 생명이 없다. 나의 존재는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이 순간에 있으므로.
전생의 의미를 새롭게 일러준 이가 있다. 「관계의 물리학」의 저자이자, 글쓰기 스승인 림태주 작가이다. 햇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어느 봄날, 그는「돈의 속성」의 저자이자 스노우폭스 대표인 김승호 회장과 함께 하는 자리에 글쓰기 제자들을 초대했다. 언제나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는 건, 마당에 마중 나온 꽃들이다. 전생에 나는 꽃이었나, 혼자 속으로 우스운 소리를 했다.
전생(前生), 이전의 생. 나는 이것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사유는 달랐다. 그는 말했다. 이미 지나간 모든 날이 전생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이미 수많은 전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지난날이 내가 한번 살아 본 전생이라면, 어제는 전생이며, 오늘은 내 인생의 평생이다.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나는 과정은, 죽음을 연습하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제의 나는 죽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태어났다. 오늘 하루가 평생이라면, 오늘의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마지막이어야 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돈룩업」이라는 영화는, 그동안 보았던 재난 영화와 끝이 다르다. 인류의 마지막 날을 예고하고, 실제로 지구가 멸망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오늘이 내 삶에 마지막이라면, 나는 무얼 하며 그 시간을 보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겠다. 더 가지려고 애쓰지 않겠다. 용기 내 화해의 손을 내밀겠다. 아끼지 않고 베풀겠다.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자유롭게 춤을 추겠다.
사람들이 전생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나와 그리고 당신이 사는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기회이다. 그러므로 살아가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