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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Oct 30. 2022

말과 마음의 일치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그녀는 더 깊은 속엣말을 꺼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당신이 늘 부러웠어. 네가 맡아서 하는 일들은 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샘이 많이 나.”      


평상시의 그녀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는 말이 이쁜 사람이라 나는 그 말이 상대를 인정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는 그녀가 가진 승부욕을 일에 동력을 주는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 사람,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웃을 때 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참 외로웠겠다.   

   

시기나 질투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수준의 사람이 잘 될 때 생기는 감정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옛말이 있다. 굳이 사돈인 이유는, 아마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혼은 비슷한 집안의 사람들끼리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였는데, 그런 사돈이 땅을 사니까 갑자기 진 것 같은 기분이 든 게 아닐까.     


나는 사실 땅을 사 본적도 가져본 적도 없다. 물론 나는 다 가졌다. 그러나 상대적인 평가로 들어가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안타까웠다. 다 가진 그녀가 왜 나를 향해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그날 그녀의 고백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맞다. 그런데 친구에게 좋은 소식이 들릴 때,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릴 때, 나는 진정으로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인가.  가만히 돌이켜 보니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랐으나 막상 좋은 소식이 들리면, 괜스레 배가 아팠던 것 같기도 같다. 어쩌면 나는 말로 기뻐하고, 마음으로 슬퍼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말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이 있다. 남이 먼저 해주기를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지 말자. 곁을 내주지 말자.’ 그렇게 접어두었던 마음을 다시 펴기로 했다. 함께 사는 이들에게 다시 마음을 주기로 했다. 그들의 기쁨에 동참하되 나와 같지 않다고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때 더욱 고맙고 반가운 것처럼, 어쩌다 받는 사랑은 덤이라 여기고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어도 괜찮다. 나는 내가 사는 나의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씨를 뿌렸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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