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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Dec 24. 2020

열정의 도시 세비야 - 가슴을 울리는 공연 플라멩코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


세비야 (Sevilla)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올리브, 포도 등의 특산물이 유명하다. 예부터 이민족의 지배를 많이 받아 알카사르와 히랄다 탑 등 이슬람 문화 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로 식민지 무역을 통해 대항해 시대 스페인의 번영의 중심지였다. 투우와 플라멩코의 본고장, 강렬한 태양만큼 뜨거운 열정의 도시. 

우리의 스페인 여행 마지막 도시 세비야이다.




산타크루즈 지구 골목길

차 한 대 지나가기도 힘들 것 같은 좁은 골목길 안 쪽에 우리가 이틀 머물 호텔이 있었다. 호텔이 있는 산타크루즈 지구는 세비야 대성당 근처이고 대부분의 관광지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였다. 오후 늦게 세비야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체크인을 한 후 거리로 나섰다. 세비야에는 2박 3일 머물 예정이라 첫날부터 그리 바쁘지 않았다. 오늘의 일정은 메트로폴 파라솔에 가서 일몰을 감상하고 저녁 식사 후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가는 비교적 간단한 일정이었다.  


메트로폴 파라솔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어서 가는 길에 골목골목 구경을 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 하얀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사이로 이리저리 길을 찾아가며 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지루해질 틈도 없었다. 며칠이나 스페인을 여행하고 있지만 또 다른 도시로 가면 여전히 신기하고 설레는 기분이 든다. 


100년이 넘은 바 엘 코메르시오

한참을 가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가게가 나왔다. 1904년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 깊은 추로스 맛집 바 엘 코메르시오 Bar el Comercio 였다. 여행 책자나 TV 여행 프로그램 등에서 워낙  많이 소개가 되어서 처음 가보는 데도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친숙한 입구에 들어서면 바 공간이 길게 놓여 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테이블이 있는 홀이 나온다. 물론 추로스만 파는 건 아니고 여러 가지 타파스나 술도 팔고 있는 바(bar)였다.


이만큼 가득한 추로스가 2 유로(약 2,600원)이다.


하몽도 먹어보고 싶었지만 간단히 먹고 나갈 거라서 추로스만 먹어보기로 했다. 입구에서 주문을 하고 음료나 음식을 받아오면 된다. 나는 전에 생각했던 대로 맥주를 한 잔 주문해 추로스를 안주삼아 마셔 보았다. 동그랗게 튀겨 주었던 바르셀로나 추로스와는 달리 크게 튀겨서 무심한 듯 툭툭 잘라서 내어 주는 것이 말라가의 추로스와 비슷했다. 역시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겨우 7.2 유로(약 9,400원)로 낮맥 한 잔을 잘 즐겼다. 그 와중에 중요한 건 주문한 메뉴들 중 맥주가 가장 싸다는 것... 스페인은  좋은 나라다.




메트로폴 파라솔 (Metropol Parasol)

세비야 중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엔카르나시온 광장에 초현대적인 건축물이 우뚝 서있다. 공중에 커다란 와플이 놓인 것 같아 보이는 이 건축물은 2011년 독일 건축가 위르겐 마이어가 만든 세계 최대 크기의 목조 건축물이다. 버섯 같아 보이는 모양을 따서 '라스 세타스 Las Setas' (스페인어로 버섯이라는 뜻)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변의 고풍스러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으나 지금은 세비야의 랜드마크로 많은 여행객들이 일몰과 야경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에 맞춰서 메트로폴 파라솔에 도착했다.  올라가서 해 지는 풍경을 보면 딱 좋을 시간이라 우리 둘은 시간 맞춰 잘 왔다며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입장권을 구입하려고 매표소로 들어서는 순간... 아뿔싸! 생각 못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방문객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비수기 평일이라 별 걱정 안 했는데... 더 일찍 왔어야 했다.



일단 후퇴!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올라가는데만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아 보인다. 올라가서 일몰까지 보고 온다면 저녁 식사는커녕  8시 30분으로 예약된 플라멩코 공연에 늦을지도 모른다. 연도 공연이지만 끼니를 거를 수는 없지. 아무래도 노을보다는 맛집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주위를 돌며 메트로폴 파라솔 사진을 더 찍고는 쿨하게 돌아섰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Los Coloniales

플라멩코 공연장은 우리 호텔 근처에 있었다. 우리는 호텔로 걸어가면서 구글맵으로 평점과 후기가 좋은 식당을 찾았다. 가는 길에 괜찮은 곳이 있어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 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대기해야 한다는데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런지 자리가 좀 남아 있었다.


Los Coloniales (사진 : 레스토랑 제공)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인 문어 샐러드와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식빵에 하몽과 메추리알을 올린 음식을 와인 두 잔과 함께 주문했다. 문어 샐러드는 역시나 (전에 먹어본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맛이 있었다. 부드럽게  익힌 문어를 작게 썰어서 아삭한 채소와 올리브유, 식초 등이 들어가 새콤하고 싱싱한 맛이 너무 좋다. 그리고 같이 나온 하몽 요리는 뭐라고 해야 할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소스의 맛이 포인트였는데 와인과 함께 먹으니 정말 기가 막힌다.


문어 샐러드
식빵에 하몽과 메추리알을 얹은 음식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식빵 위에 올려진 하몽의 깊고 진한 맛은 혀 위에서 감미로운 짠맛을 내고 있고 그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메추리알 프라이의 맛은 말해 뭐할까. 적당한 바디의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한 점 먹으니 입 안에서 천국이 펼쳐지는 것 같다. 아직도 딸은  음식이 스페인 여행하며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특별한 맛집을 찾게 되어 기분도 좋아졌다.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와인으로 한껏 즐거워진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위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하몽 : 돼지 뒷다리의 넓적 다리 부분을 통째로 잘라 소금에 절여 동굴 같은 곳에 매달아 건조, 숙성시켜 만든 스페인의 대표적인 생햄.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하몽을 높게 쳐준다.





플라멩코(Flamenco)

플라멩코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집시 문화로부터 전하여 오는 민속 음악과 춤을 말한다. 노래(칸테, cante), 춤 (바일레, baile), 음악 연주 (토케, toque)로 구성되어 있고 기타나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춰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는 격렬한 리듬과 동작이 특색이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어 있다.


플라멩코 (출처  : pixabay.com)

예전에는 플라멩코가 탱고 같은 댄스의 일종인 줄 알았다. 오래전 사이언 휴대폰 광고에서 앳된 김태희가 스페인 광장을 배경으로 예쁘게 추었던 플라멩코가 기억에 남아서일까? 그저 여성 무희의 춤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꽃보다 할배'를  보고 플라멩코가 노래와 춤 그리고 음악으로 이루어진 종합 예술인 걸 알았고 언젠가 스페인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페인은 여러 도시마다 플라멩코 공연장이 있어 볼 기회가 많다.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에도 훌륭한 공연을 하는 곳이 많았지만 우리는 본고장인 세비야에서 보고 싶어서 다른 도시에서는 보지 않고 세비야의 공연을 예약했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답게 세비야에 역시 많은 플라멩코 공연장이 있었고 스페인 광장 같은 야외에서 버스킹처럼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도 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니 플라멩코 박물관도 유명하고 예전 '꽃할배'에 나왔던 것 같은 식사를 하며 공연을 볼 수 있는 곳도 인기가 있었. 이렇게 공연장이 많았지만 우리가 선택한 곳은 호텔에서 가까운 라 카사 델 플라멩코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라 카사 델 플라멩코 (La Casa del Flamenco)

알칸타라 호텔에서 운영하고 있는 라 카사 델 플라멩코의 공연은, 극장처럼 전면에 관객들이 앉고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플라멩코 박물관이나 다른 공연장과 달리 바닥에 낮은 나무 단상 무대가 있고 그 위에서 공연을 한다. 낮은 단상을 가운데 두고 양 측면과 정면에 3줄 정도 놓인 의자에 앉아 가까이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이 의 특징이다.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공연하는 배우들의 호흡과 열기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어 공연이 끝나는 늦은 시간에도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 이 공연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공연장 입구

예약 시간은 8시 30분이지만 조금 일찍 도착했다. 좌석은 선착순이라 앞자리에 않으려면 일찍 가야 했다. 벌써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출력해 간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 맨 앞자리는 빈틈이 없다. 세 줄 밖에 안되니 뒤에서 봐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맨 앞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몇 자리 비어있는 왼쪽에 앉았다.



공연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과연 눈 앞에서 보는 플라멩코는 어떨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준비된 의자에 한 명씩 배우들이 등장해 앉으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남 녀 메인 배우 두 명과 기타 연주를 하는 남자 한 명과 노래와 보조 공연을 하는 배우 둘, 이렇게 다섯 명의 배우로 구성되어 있었다.



빠른 리듬 속에 결코 가볍지는 않은 기타 연주에 맞춰서 가수는 거칠고 깊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스페인어를 몰라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사연이 담긴 듯 슬픔이 느껴지는 노래는 애잔하면서도 흥겹게 들린다. 이 묘하게 어긋난 매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노래에 맞춰 박수와 발구르기를 하며 메인 배우의 춤이 펼쳐졌다. 절도 있고 현란하게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의 리듬에 왠지 가슴이 쿵쿵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배우의 독무도 있었고 기타 연주만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구성된 무대에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공연이었다.


※ 공연을 보느라 찍은 사진도 별로 없는데 딸이 찍어둔 동영상이 있어서 같이 올려 보았다. 갑자기 소리가 날 수 있으니 혹시 영상을 보실 분은 소리를 낮춰서 보시길 바란다.



이슬람 문화와 집시의 감성이 함께 어우러져서인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슬픈 정서가 느껴지는 듯했다. 특히 박수 소리와 발을 울리는 소리는 우리의 심장 소리인 듯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는 것 같았다. 한국 전통 사물놀이를 볼 때 꽹과리와 징 소리가 크지만 시끄럽다기보다는 가슴이 뛰는 흥분을 느끼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가까이에서 보아서 더 현장감 넘치고 배우의 흥이 그대로 전해지는 날 것 같은 공연이라 더 좋았다. 스페인의 짙은 감성에 가슴 한가득 한숨 쉬듯 아쉬운 여운이 남.


가슴을 두드리는 감동을 안고 호텔로 돌아가는 등 뒤로 세비야의 밤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처음 만난 세비야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내일은 또 어떤 세비야와 만나게 될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이미지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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