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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Mar 25. 2021

포르투에 도착한 날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도우루 강 야경


마지막 여행지 포르투 (Porto)

 루이스 1세 다리 아래로 흐르는 도우루 강에는 와인을 운반하던 선박이 오르내리고 강가의 히베이라 광장에는 전 세계의 여행객들이 모여든다.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히베이라 지구의 빈티지한 주황색 지붕이 노을빛으로 더 붉게 물들어가면 광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가수의 버스킹 음악에 짙은 와인 향이 묻어 난다.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인 도시, 포르투가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포르투 도우루 강


언젠가는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도시, 어떤 기사에서든 '유럽 한 달 살기 해보고 싶은 곳' 하면 꼭 빠지지 않는 도시, 포르투는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도우루 강 하류에 위치해 예부터 다른 나라와의 교역으로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라틴어로 부두라는 뜻을 가진 'Port'에서 유래된 포르투는 리스본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 왕의 출생지이며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항구 도시이다. 코르크와 포트 와인의 산지이고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상 벤투 역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다. 왠지 모를 설렘과 아쉬운 마음으로 리스본을 떠나 포르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세 시가 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는 포르투의  벤투 역, 거대하고 정교한 푸른 아줄레주가 화려하게 대합실 벽을 장식하고 있어 기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역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하지만 세 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에 지친 우리는 역 안을 구경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음날 찬찬히 구경하기로 하고 호텔부터 가기 위해 캐리어를 끌면서  밖으로 급히 나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번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날씨 운이 너무 좋다 싶더... 결국 마지막 도시 '포르투'는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비 내리는 포르투

우리는 호텔에서 체크인만 하고는 바로 오후 일정에 나섰다. 이미 오후 네시 가까이 되어서 마음이 급했다. 첫날은  와이너리 투어만 할 예정이고 투어가 끝나면 돌아오는 길에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과 모로 공원에 들러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도우루 강의 석양과 야경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도우루 강을 경계로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는 곳은 히베이라 역사 지구이고 반대편은 유서 깊고 유명한 와이너리들이 모여있는 빌라 노바 지 가이아 지구이다. 강가에 많은 와이너리들이 모여 있어서 다리를 건너면 걸어서도 쉽게 가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투어를 하기로 한 테일러 와인 하우스는 숙소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에 있었고 궂은 날씨 때문에  우버를 불러 타고 가기로 했다.


포트 와인

포트 와인 Port Wine

포르투에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포트 와인이다.  상류의 도우루 언덕 포도 농장에서 재배되고 생산된 질 좋은 와인은 도우루 강가에 들어선 유서 깊은 와이너리에서 보관 숙성된 후 와인 운반선을 이용해 판매되었다.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으로 와인 수입이 끊기자 영국은 바닷길로 질 좋은 포르투갈의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으나 오랜 항해로 와인의 숙성이 빨라져 맛이 변하고 말았다. 포르투의 와이너리들은 와인 숙성 과정에 브랜디를 첨가해 주정을 강화해서 단맛과 도수를 높인 와인을 탄생시켰고 그 와인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트 와인이다. 원산지인 포르투의 이름을 따서 포트 와인(Port Wine)이라 불린다.


보통의 와인은 8~13도 정도지만 주정 강화 와인인 포트 와인은 18~20도 정도의 비교적 높은 도수의 와인이다. 백포도로 빚은 화이트 와인과 적포도를 1~3년 사이로 단기 숙성시켜 맑은 붉은빛을 내는 루비(Ruby Port) 그리고  오크 통 안에서 오랜 기간 숙성시킨 짙고 어두운 주황빛의 토니(Tawny Port) 등 여러 종류의 와인이 있다.



테일러 와인 하우스

입구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았다. 다른 와이너리와 달리 테일러는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와이너리의 역사와 와인 생산 과정, 커다란 오크 통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가면서 천천히 단계별로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공간이 나온다.



1인 15 유로인 투어 코스에는 두 잔의 와인 시음이 포함되어 있는데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레스토랑에서 시음할 수 있다. 더 주문해서 마실 수도 있는지 메뉴판과 카운터도 보인다. 한쪽에선 와인과 관련 용품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고 넓은 홀 안에는 오크통 모양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날씨가 좋으면 정원에서 마실 수도 있다는데 도우루 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끝내준다고 한다. 전망 좋은 밖에서 마시고 싶지만 비 때문에 실내에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직원이 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각각 한 잔씩 따라주었다. 애걔 너무 조금 주는 것 같은데... 도수가 높아서 그런가? 둘이서 짠~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예전에 포트 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화이트 포트 와인은 처음이다. 그래서 궁금한 화이트 와인부터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덜 달고 풍부한 향이 산뜻하게 느껴졌다. 레드 와인도 말할 것도 없이 맛이 있다. 전통 깊은 테일러 와인답게 품위 있는 향과 거슬리지 않는 단 맛에 감탄이 나온다. 안주 없이 도수 높은 술을 마시긴 쉽지 않지만 얼마 안 되는 양이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와인이 맛있기는 했지만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오디오 가이드 내용이 온통 테일러의 역사와 전통, 와인 품질 등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 회사 자랑이 거의 다였고 사실 지금은 그리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와인도 생색내듯 너무 조금만 주는 것 같고 굳이 와이너리 투어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가 싼 포르투라 둘이서 30 유로면 좋은 와인 몇 병은 사서 마실 수 있었을 텐데... 다시 포르투에 갈 기회가 된다면 아마도 와이너리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

와이너리를 나와 천천히 도우루 강을 전망할 수 있는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으로 걸어갔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과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원래는 도우루 강에 노을이 드리워지는 모습과 동 루이스 1세 다리 전망을 감상할 예정이었지만 현실은 흩날리는 비와 바람, 그리고 추위에 점차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이왕 올라왔으니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인증 사진 몇 장 찍고 그냥 내려와야만 했다.


수도원에서 본 도우루 강과 모로 공원

수도원에서 내려와 요즘 포르투 젊은이들에게 전망 명소로 핫하다는 모로 공원으로 가보았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와인이나 맥주를 들고 잔디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많은 여행객들과 커플들로 자리가 없다는데 지금은 우리처럼 떨면서 강을 바라보는 몇 명 안 되는 여행객만 있을 뿐 황량하기만 다.


동 루이스 1세 다리


결국 일몰 감상은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가 좀 쉬기로 했다. 긴 도시 간 이동과 비바람에 잔뜩 지친 탓이다. 돌아갈 때는 도우루 강을 가로지르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걸어서 건너갔다. 어딘지 모르게  파리에 있는 에펠탑을 닮은  같은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아니나 다를까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디자인했. 에펠 탑처럼 철골 구조로 된 다리가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뉘어 있고 위쪽에는 트램이, 아래쪽으로는 자동차가 다니게 되어 있는데 두 군데 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보행로가 있다. 지어질 당시에는 파격적인 건축 형태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다리 위에서 보 도우루 강의 석양과 야경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볼 수 없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석양은 놓쳤지만 야경은 포기할 수 없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비 내리는 히베이라 광장을 우산을 쓰고서 이리저리 거닐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담벼락을 테이블 삼아 큰 파라솔과 의자를 놓은 바 한 군데를 발견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뷰가 좋았다. 자리에 앉으니 조명을 밝힌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바로 눈 앞에 있다. 다리에 밝혀진 조명 빛이 강에 반사되어 마치 별이 강물에 떨어져 내린 듯 물결 따라 반짝이며 흔들린다. 비가 내리는 히베이라 광장의 야경은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와인만 반 병 주문했는데 인심 좋게도 두 종류의 올리브가 넉넉하게 함께 나왔다. 우리 여행 마지막 도시의 첫 번째 밤을 축하하며 잔을 부딪혔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가만히 강물을 바라본다.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버스킹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는 히베이라 광장에 비가 와서인지 버스킹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오기 전 보았던 사진처럼 선명하게 빛나지 않아도, 비에 가려 회색빛으로 흐리게 보여도 포르투의 밤은 너무나 좋았다. 비가 와도 좋았는지, 비가 와서 더 좋았는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와인 잔을 부딪히며 내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비 내리는 도우루 강 야경

 

이전 15화 리스본 마지막 밤은 파두 선율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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