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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Mar 14. 2021

리스본 마지막 밤은 파두 선율에 잠긴다.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 파두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

어둠이 내리고 거리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면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노동자들과 뱃사람들이 삼삼오오 항구의 선술집으로 모여든다. 선술집 한쪽에선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을 두른 채 파두를 부르는 가수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거친 노동과 일과에 지친 그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파두(Fado)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바다를 운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바다와 함께했다.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 바다로 인한 체념과 이별, 슬픔과 진한 그리움이 모두 녹아있는 노래가 바로 파두이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한평생 바다를 따라 떠돌다 늙고 지친 뱃사람들이 리스본의 알파마(Alfama) 지구에 정착해 그들의 환을 노래한 것이 파두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파두를 '리스본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테주강이 내려다 보이는 리스본의 알파마 지구에는 해가 지면 파두 하우스라고 불리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파두 공연이 열리곤 한다. 클래식 기타와 파두 기타의 독특한 선율이 떨리듯 시작되고  울먹이는 듯 들려오는 애절한 가수의 노랫소리는 가슴을 뒤흔든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골목길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예약 시간 10분 전쯤 레스토랑도착했는데 입구에 나와있던 나이 지긋한 직원이 호객 행위를 하며 들어오라고 다. 우리가 이미 예약했다고 하니 크게 웃으며 2층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리스본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은 파두와 함께 하고 싶었다. 리스본 전역에 많은 파두 레스토랑이 있고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던 곳이나 유명한 곳이 많지만 밤늦게 돌아다니기엔 좀 무서워서 숙소와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다. 


솔리도 입구

후기도 좋았고 호텔과도 가까운 솔리도( Solido)라는 작은 레스토랑인데 음료만 하나 주문해도 파두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2층 홀이 좁아서 (2층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저녁 7시 공연을 보기 위해 예약하고 십분 정도 전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가게 안에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다. 어... 별로 인기 없는 곳인가? 좀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은 공연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음식부터 주문하려고 직원을 불러 리스본식 대구 요리 바칼라우새우 요리인 감바스를 주문했다. 레드 와인을 더 좋아하지만 해산물을 시켰으니 화이트 와인도 한 병 달라고 해본다. 와인이 먼저 나와서 둘이서 한 잔씩 음미하는 사이 하나 둘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7시가  다 되어갈 때는 비어 있는 자리가 거의 없이 북적였 음식이나 술을 주문하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러워졌.



감자와 함께 익혀 나온 다진 대구 요리가  꽤 낯설었다. 한 입 먹어보니 맛이 나쁘지는 않다. 부드러운 흰 살 생선의 깊은 맛과 고소한 감자의 콜라보가 이 정도면 먹을만하지 않냐고 말하는 듯하다. 슴슴하고 담백한 대구와 함께 먹는 감바스는 꽤나 매력적이다. 스페인에서와 다르게 큰 새우 여러 마리 껍질채 올리브유에 볶여 있고 통째로 길게 들어가 있는 붉은 고추가 플레이팅 된 것만이 아니라 제 나름의 매운맛을 내고 있어 우리 입에  맞았다. 그리 가볍지 않은 상큼한 화이트 와인이 향긋하게 입 안을 감돈다. 와인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 맛에 이게 다들 말하는 마리아주인 건가 싶다. 일단 음식은 합격이다.




공연 시간이 되자 젊고 잘생긴 연주자 두 명이 먼저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아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조율을 하는 건지 연주만 우선 들려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들어본 적 없는 다른 기타 연주에 특별한 느낌이 들었. 난생처음 보는 특이하게 생긴 기타가 눈길을 끌었는데 차라랑~거리는 소리가 마치 동양적인 음색을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처량하고 구슬프게 들리는 기타 소리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정서가 느껴져 더욱 서글프기만 다. 아직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기타 연주만으로 가슴을 뒤흔드는 것 같은 감동이 온다.





파두는 12개의 금속 현을 가진 포르투갈 전통 기타, 기타라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와 클래식 기타 두 가지의 연주에 맞춰 가수인 파디스타(Fadista)가 노래하는 공연이다. 특히 파두 기타라 불리는 기타라는 팽팽한 고음의 음색을 낸다고 하는데 청명하고 맑은 소리가 어둡고 처량한 파두의 분위기를 더 감동 깊게 느끼게 해 준다고 한다.


파두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인 음악 두 가지 중 하나로 주로 스페인의 플라멩코와 비교되기도 한다. 춤과 박수, 기타 연주와 노래가 함께 표현되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와는 달리 기타 선율과 가수의 목소리 만으로 독특한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는, 조금은 정적인 음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목소리에 실리는 감정에는 더 깊은 기다림과 그리움이 절실히 느껴지는 것 같다.



조금 있으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가수와 여가수가 번갈아가며 여러 곡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포르투갈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선율과 노랫소리에 깃든 분위기에 압도될 것만 같았. 힘 있는 목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리는 남자 가수의 노래도 좋지만 왠지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여가수의 절절한 목소리가 나의 눈과 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 정확한 멜로디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그때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는 선명히 떠오른다.


흐릿한 조명 아래 어두운 홀 분위기, 울먹이는 듯 허스키한 목소리호응하는 여러 관객들,  잔 와인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마주 앉은 좋은 사람, 나의 여행 메이트인 딸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많은 대화들, 완벽하게 멋진 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너무나도 그리운 밤이다. 다시 그런 밤이 올 수 있을런지...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은 아니었지만 우여곡절도 많았고 좋은 기억이 정말 많았던 리스본과의 이별이 슬퍼서였을까.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까. 그 날, 파두 공연은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고 마음은 말도 안 되는 감성에 젖어들었다. 어쩌면 가게를 나와 호텔에딸과 맥주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의 기억은 파두를 보며 느꼈던 슬픈 감성, 그리움 가득 느껴지던 애절한 멜로디... 그게 다였다. 그렇게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은 시리도록 그리운 파두 선율과 함께 깊어만 갔다. 





※ 표지 그림 : 조제 말로아(Jose Malhoa)의 'O F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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