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가는 10월도 벌써 중순을 넘어선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그만큼 가을도 성숙한 여인으로 농익어간다. 이맘때가 되면 한 번쯤 생각나는 옛 추억이 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추위도 늦게 찾아오고, 춥다고 해도 예전처럼 매서운 맛이 없다. 어렸을 때는 추석만 되면 긴 팔을 입을 정도로 날씨가 싸늘했다. 차가운 날씨가 본격적으로 꿈틀대는 11월에 들어서면 부모님의 걱정도 덩달아 깊어졌다.
그때부터 손이 틀 정도로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월동준비를 해야 했다. 자질구레한 것들 빼고 가장 큰 준비는 김장과 연탄이었다. 김장은 겨우내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챙기는 일이고, 연탄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필수 준비물이었다. 김장하고 연탄 광에 연탄을 가득 채우고 나면 그제야 부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요즘이야 보일러가 있어 한겨울에도 집에서 반소매를 입고 지내는 좋은 세상이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런 세월을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산다. 찬 바람이 사정없이 불고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던 연탄이 주변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됐다. 요즘은 연탄에 고기를 구워 파는 음식점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다. 아직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집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연탄 하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연탄불을 갈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던 어머니와 그 당시 흔했던 연탄가스 생각이 난다. 연탄으로 난방하던 시절에는 한밤중에 다급하게 골목으로 들어서는 날카로운 앰뷸런스 소리에 밤잠을 깨곤 했다. 아침마다 방송에서는 지난밤 연탄가스중독사고로 어디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나도 두세 번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이 있다. 다행히 심하게 연탄가스를 마시지 않은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다. 전신이 축 늘어지고 정신이 몽롱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집에서 응급조치로 차가운 동치미 국물과 식초를 사용했다. 정신이 몽롱한 사람에게 차가운 동치미 국물을 먹이거나 코끝에 강렬한 식초 향을 쏘이면 정신을 차렸다. 그 때문에 김장할 때는 집마다 동치미를 빠뜨리지 않았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작품인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를 다는 몰라도 이 첫 구절만큼은 알고 있다. 시는 아직 남았는데, 시의 주제였던 연탄은 우리 주변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졌다. 연탄을 보려면 이젠 박물관이라도 찾아가야 할 판이다.
강원도 영월은 여러 번 다녀왔다. 영월에는 이름난 관광지도 많지만 다양한 박물관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월이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큰 축이었다는 사실이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연탄이 우리 일상에서 사라지면서 영월의 탄광 역사도 덩달아 흐릿해졌다. 탄광은 영월의 역사이고, 오늘의 영월을 있게 한 근본이다. 영월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탄광과 관련한 볼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석탄 산업이 한창일 때, 영월에는 영월 탄광을 비롯해 8개의 탄광이 있었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채산성이 떨어진 탄광들이 하나둘 모두 폐광했다. 탄광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영월에 이와 관련한 볼거리가 없을 수 없다. 탄광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그 많은 직업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기 어렵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그중의 일부 그것도 대충 어떻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지하 수백m 어두운 갱도에서 석탄을 캤던 광부들의 삶은 상상만으로 느낄 수 없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잦았고, 무너진 갱도에서 몇몇 일을 견디다 구출되는 기적 같은 일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위험을 안고 살았던 광부들의 삶을 한낱 상상으로 알 수 있겠는가. 광부들의 삶은 그들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삶이기에 더욱더 궁금하다. 빠르게 가을이 깊어가는 이번 영월 여행은 궁금했던 것을 알아보려고 강원도 탄광문화촌에서 시작한다.
역시 강원도의 가을은 한발 빠르다. 강원도 탄광문화촌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영월 풍경은 이미 가을이 농익었다. 산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일주일만 있으면 단풍은 이 가을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절정에 이를 듯하다. 강원도 탄광문화촌에도 가을은 가득 내려앉았다. 하늘은 도시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르게 유난히 높고 푸르다. 파란 하늘 위에 그림을 그린 듯 떠 있는 하얀 구름이 가을 정취를 한껏 자아낸다. 햇살은 기분 좋게 따스하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는 가을날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강원도 탄광문화촌은 영월군 북면 마차리 일대에 있다. 잊혀 가는 탄광촌의 모습을 보존하여 체험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월의 역사와 탄광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강원도 탄광문화촌을 건립한 것은 참 좋은 생각이었고, 어찌 보면 하나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다. 강원도 탄광문화촌은 석탄 산업이 번창했던 시절의 마차리 일대 탄광촌을 재현해 놓았다. 강원도 탄광문화촌 생활관에서는 마차리 탄광촌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갱도 체험관에서는 석탄을 채취하던 광부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6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에는 식당인 마차집과 마차 상회가 있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건물에 이게 뭐지? 하는 호기심이 일어난다. 본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맛보기로 만든 예고편을 보는 기분이다. 옛 모습의 마차집과 마차 상회를 보면 강원도 탄광문화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보면 이 건물을 만들어 놓은 의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면 탄광촌 생활관이다. 평일에다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구경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때문에 이곳만이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이런 상황이니 걱정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려는데 무료라고 한다. 이번 여름에 닥친 태풍으로 갱도 체험관이 피해를 보아 탄광촌 생활관만 볼 수 있어 한시적으로 무료 개방이라고 한다.
무료라는 소리가 싫지는 않지만, 갱도 체험관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적지 아니 크다. 그래도 탄광촌 생활관만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먼 길을 왔는데 이마저도 볼 수 없다면 어쩔 뻔했나. 체온을 재고 인적 사항을 적고 손 소독까지 하고 나서 탄광촌 생활관에 들어선다.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시간을 거슬러 옛 마차리 탄광촌으로 데려간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예전의 대폿집이 있고, 눈에 익은 동네 이발관과 만물상회까지 하나둘 나타난다.
그 모습은 꼭 탄광촌이어서가 아니라, 6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지난날 우리들의 모습이다. 분명 재현해 놓은 것인데도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빠르게 다시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지난 추억들이 다투어 고개를 쳐든다. 그 추억들은 머릿속에서 동시상영 영화관의 비 내리는 낡은 필름처럼 돌아간다.
요즘은 시골 오일장에서도 보기 어려운 뻥튀기 아저씨도 있다. 어릴 때는 뻥튀기 아저씨가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동네에 왔다. 뻥이요! 외치는 소리와 함께 골목에 대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뻥튀기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뻥튀기 맛은 길게 이야기할 것이 없다. 전시물마다 그것에 얽힌 추억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쉴 새 없이 되살아난다. 그 때문에 탄광촌 생활관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추억을 꺼내 구경하는 기분이다.
널빤지로 만든 공중변소에서는 괜히 악취가 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급히 숨을 멈춘다. 변소 옆에서 엉덩이를 까고 일을 보는 아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될 변소 통까지 살펴보는 건 추억이 등을 떠밀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공중변소와 청결한 지금의 화장실을 생각하면 정말 세상이 몰라보게 변했다. 공중변소를 쓰던 그 시절에 지금 같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그때와 지금이 이어지는 세월이 아니라, 두부 자르듯 단절된 세월처럼 느껴진다.
탄광촌 생활관 규모는 생각처럼 크지 않지만, 그 시절의 모습이나 추억을 꺼내기에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추억이란 게 참 묘하다. 거기에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는데 왜 이리 가슴이 따스해지는지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키워준 세월과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추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물건을 찾기 위해 다시 그곳에 간다. 그것처럼 잃어버린 소중한 지난날의 시간이 추억 속에 있어 자꾸 들추게 된다. 추억 속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만져볼 수 없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옛 모습 그대로 거기에 있다. 한번 보고 나오기엔 아쉬워 탄광촌 생활관을 몇 번 더 둘러본다. 지난날의 추억과 탄광촌 생활관의 옛 모습이 하나로 뒤엉켜 가슴속에 남는다. 추억이 영원하듯이 탄광촌 이야기도 지워지지 않는 전설로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