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천호동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88서울올림픽 때, 올림픽문화센터에서 함께 근무했다. 올림픽문화센터는 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단을 위해 전시관과 영화관을 운영했고, 공연도 했던 곳이다. 영화관은 국내 최초 3D 전용 영화관이었다. 올림픽 때는 "Rainbow War"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빨강, 파랑, 노랑 나라가 물감으로 싸우다 색이 합쳐지면서 멋진 무지개를 이루며 화합한다는 내용이었다. 편집 작업에 참여한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특별한 추억이 있다.
천호동 사는 친구는 그때 영사기사였다. 나이가 같아 직장 동료에서 친구가 되어 지금껏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던 그때 그 젊은 날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 친구는 계속 영상 관련 쪽에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시간의 필름을 되돌려 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는 중에 친구가 불쑥 한마디를 던지며 말끝을 흐린다. “설마하니 필름이 없어질 줄 누가 알았나…” 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막상 퇴직하니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영화필름이 돌아가는 세상이면 일할 곳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텐데 하는 푸념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던 주변의 일상이 알게 모르게 변해버렸다. 뒤늦게 되돌아보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이 변했다.
그 친구를 만난 때문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두천에 있는 작고 오래된 극장을 알게 되었다. 지난 추억의 이야기를 잔뜩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찾은 김에 바로 동두천으로 간다. 오랜만에 영화도 볼 겸 어떻게 생긴 극장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멀지 않은 곳에 크고 좋은 영화관이 있는데, 고작 극장 구경하려고 동두천까지 가냐고 할지 모른다. 동두천에 있는 동광극장은 요즘 흔히 보는 그런 영화관이 아니다. 6~70년대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극장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단일관이다.
요즘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고 해서 한 영화관에 여러 개의 스크린이 있다. 스크린마다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즉석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다. 편의시설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되어있다. 영화관이 좋아졌고, 영화를 좋아하는데도 정작 영화관은 잘 가지지 않는다. 잘해야 일 년에 두어 번 갈까 말까다. 사람이 많아 복잡한 게 싫은데다, 젊은이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드는 것 같아 선뜻 가지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조금 참았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TV로 본다.
한참 영화를 보러 다녔던 젊은 날의 극장은 스크린이 하나인 단일관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 한 편의 영화만 상영했다. 좋은 영화가 걸리거나 명절날이면 극장 앞은 구불구불 늘어선 사람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영화관은 새로 나온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이었고,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개봉관에서 끝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이 있었다. 변두리 지역에는 오래전에 나왔던 영화를 한 번에 두 편씩 보여주는 동시상영 극장이 곳곳에 있었다.
동시상영 극장의 영화는 이 극장 저 극장을 돌고 돌은 낡은 필름이라 스크린에서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비 내리는 영화를 이해할까 모르겠다. 비만 내리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에 끓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야유와 함께 비난의 휘파람 소리가 귀 아프도록 터져 나왔다. 그러다 다시 영화가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극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요즘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지만, 그때는 다들 그러려니 했고 그것도 영화 보는 재미의 일부분이었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동광극장을 찾아간다. 길 건너편 전봇대에 가려진 동광극장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가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반갑다. 사람이었다면 달려가 반가운 마음에 와락 끌어안고 팔짝팔짝 뛰었을 것이다. 옛 친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극장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세라 찬찬히 살핀다. 예전처럼 화가가 직접 그린 영화 간판만 걸려 있으면 영락없이 그때 그 시절의 극장이다.
영화 포스터가 소중한 전시물인 양 진열장 안에 붙어 있고, 주인장이 직접 쓴 투박한 글씨의 영화 상영시간표가 정겹게 걸려있다. 예전처럼 비 내리는 영화가 아닐까 했는데 요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최신 영화를 상영한다. 하루 6번 영화를 상영하는데, 3편의 영화를 회마다 바꾸어 상영한다. 이것을 보면 옛 추억의 동광극장도 변해버린 세월을 무작정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나 보다.
극장표를 사려고 극장 앞을 살펴봐도 표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 망설이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싶어 되돌아서려고 했다. 극장인지 잡화점인지 아니면 옛날식 다방에 들어온 건지 헷갈린다. 어리둥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내부를 살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큼지막한 배너다. 배너에는 한참 좋아했던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나온 동광극장 모습이 들어가 있다.
모니터가 여러 대 놓여 있는 오른쪽 데스크에서 표를 판다. 왼쪽에는 옛날 극장처럼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된 간이매점이 있다. 실내 안쪽에는 여러 개의 어항이 보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 피겨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벽면 한쪽에 있는 커다란 필름 영사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극장 주인이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영사기 상태가 아주 좋아 보인다. 지금이라도 필름만 걸면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것 같다. 구시대 유물이 되어버린 영사기는 동광극장의 지난 역사를 말해준다. 극장 안에 있는 것들이 지난 세월의 추억을 불러일으켜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30여 분이 남았다. 상영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사람이 없어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깝다. 일찌감치 와서 한참 TV를 보고 있는 어르신과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가 전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람이 오나 안 오나 나도 모르게 자꾸 출입문에 눈길이 간다. 오늘따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서 그런가? 닫혀 있는 극장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데스크에서 표를 팔던 분이 사장인데 얼추 동년배로 보인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사장님에게 말을 붙여본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가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에 금방 말이 통한다. 예전 극장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동광극장은 1959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른 극장을 운영하고 계셨던 사장님의 부친이 인수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1986년부터 본인이 맡았다고 한다.
극장 운영 상태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 한번 물어본다. 사장님은 직설적으로 대답하기 곤란한지 슬쩍 말을 돌린다. 대형마트가 생기면 동네 가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그런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옛 극장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극장을 지키고 있는 사장님이 다시 보이고, 한편으로는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서로 말이 통하니 묻지 않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려준다. 특히 잘 보존해놓은 영사기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먼저 상영한 영화가 끝났다. 어떤 모습일까 잔뜩 기대하면서 어슴푸레한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극장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 내부 구조와 분위기는 예전 극장 그대로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젊은 날 극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2층 구조로 된 객석은 283석이고, 의자는 기대 이상으로 널찍하고 푹신하다.
자리를 잡고 분위기에 젖어 있는데 사장님이 찾아와 2층 맨 앞줄로 데려간다. 여기서는 난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쭉 뻗어도 된다고 한다. 이것이 동광극장만의 특색이자 자랑거리라고 한다. 어디서도 이렇게 느긋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래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싶어 아래를 살펴보니 아래층 객석과는 떨어져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것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지 않을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최근 것으로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이 동광극장이 품은 세월보다 더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렇긴 해도 지난 과거의 시간이라는 빨랫줄에 함께 걸려 있어 영화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스크린이나 음향시설은 나무랄 것이 없다. 보이는 모습만 그렇지 영상 장비는 최신 영화관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기에 다른 영화관에서 누릴 수 없는 최고의 편안함과 추억의 분위기까지 있어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어느덧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어둠을 밝히는 불이 하나둘 들어온다. 눈을 크게 뜨고 재빨리 객석을 살핀다. 몇 명이 있는지 그게 무척 궁금했다. 극장에 왔을 때 먼저 와있던 가족과 어르신 외에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자 두 명이 전부이다. 이 정도면 극장을 전세 내어 영화를 본 셈이다. 직원 없이 사장님이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뒷정리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극장 겉모습에 매이지 말고 많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이에 있다면 영화를 보고 싶을 때마다 동광극장을 찾을 것 같다.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기억 저편의 추억을 들추어 본 만족감과 함께 극장의 안타까운 현실이 겹쳐진다. 다시 또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사장님에게 다음에 들리겠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와 기약 없이 다시 헤어지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내가 힘이 되어줄 것은 없지만, 동광극장이 지금 이대로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다. 나라가 발전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들 먹고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 새로 짓는 것과 함께 지난 것들을 보존하는데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실제 사회 곳곳에서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그것처럼 동광극장도 오래도록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의 시간을 우리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2019.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