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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an 08. 2022

할라피뇨 크루아상

양쌤의 another story 3

 어! 페스츄리 전문점이 생겼다.     

 

 버스를 타면 거리의 간판을 살피기 바쁘다. 간판 구경하는 게 참 재밌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운전할 때는 잘 볼 수 없던 2층의 간판도 살펴본다. 깔끔하게 간판을 교체한 가게도 있고 새로 생긴 가게도 있다. 간판만 보고서도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가게는 꼭 기억해두려 한다. 어! 그런데 한 가게가 시선을 잡았다. 페스츄리 전문점이 생겼다.

 

 우리 집 ‘땡그리 공쥬’는 어릴 때 크루아상을 좋아했다. 모양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빵을 고를 때면 크루아상을 가리키곤 했다. 크림이나 잼도 없이 오로지 버터맛 하나로 승부하는 크루아상을 좋아하는 것이 신기했다. 페스츄리 하면 떠오르는 것은 크루아상, 애플파이, 고구마 파이 정도인데 저 페스츄리 전문점엔 어떤 페스츄리가 있을까?

  오며 가며 눈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들어가 볼 기회가 생겼다. 처음 친구와 들어간 날 홀린 듯이 집어 올린 빵 맛을 본 순간 결심했다. 여기 있는 모든 빵을 꼭 다 먹어보고야 말겠어. 적립카드도 만들었다.

  두 번째 찾아간 날, 눈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페스츄리들을 왼쪽부터 빈틈없이 훑어보고 있는데…

아니 이 비주얼은! 생크림 듬뿍, 빨간 딸기, 노란 망고, 다홍빛 레드자몽이 얹어진 페스츄리들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페스츄리가 떡 하니 앞줄에 있다. 설마, 설마 저것은 할라피뇨? 반으로 가른 크루아상 안에 노랗고 굵은 치즈와 마요네즈 색깔의 소스가 나란히 줄을 서 있고 그 가운데를 할라피뇨가 옹기종기 따라 줄을 섰다. 그리고 그 아래 풀빛의 길쭉한 소시지가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었다. 옆에 페스츄리를 소개한 작은 카드를 보니 청양고추 소시지였다. 와~ 예상 못 한 조합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할라피뇨가 든 핫도그도 먹어봤고 청양고추 소시지도 먹어봤지만, 버터맛 가득한 크루아상에 청양고추 소시지와 할라피뇨라니. 망설일 것도 없이 두꺼운 할라피뇨 크루아상을 집어 들었다. 망고 크루아상과 고구마 파이까지. 직원이 빵 상자를 최대한 평평하게 장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혹시나 기우뚱해서 생크림이나 망고가 흘러내릴까 할라피뇨가 떨어질까 아주 조심해서 들고 갔다.  

오른쪽이 할라피뇨 크루아상

  “페스츄리 사 왔어. 근데 희한해.” 땡그리 공쥬와 마주 앉아 한 입씩 나눠 먹었다. “음~~~ 괜찮네.”

바삭한 고소함과 매콤함, 달콤함과 짭조름한 맛이 둥글게 둥글게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있다.  

  생크림 과일 크루아상이 디저트 느낌이라면 할라피뇨 크루아상은 배가 든든하다. 음료와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다. 알록달록 상큼한 크루아상에 비해 비주얼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그래도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할라피뇨 크루아상 편을 들어본다.    


  남편과 얼마 전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를 해 보고 둘이서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우리는 정말 안 맞아 안 맞아.” 나는 ENFP(외향, 직관, 감정, 인식형), 남편은 ISTJ(내향, 감각, 사고, 판단형)였다. 어쩜 지표를 나타내는 여덟 개의 문자 중에서 겹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재미로 한 검사였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성격도 취향도 취미도 맞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게 훨씬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채워주는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 29년 차 커플이 되었다. 함께 하며 각자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이제는 잘 맞는 것도 같고 닮은 것도 같다. 우리가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걸 문득 깨달을 때도 있다. 서로의 다름이 힘들 때도 있지만, 서로의 다름이 의지가 되고 안정을 준다.

  

  크루아상과 할라피뇨, 청양고추 소시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 부부가 되고 혹은 친구가 되어 오래오래 함께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개성이 강해 부딪칠 일이 많았을 텐데 서로의 빈 부분을 채워가며 서로에게 물들어가며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처음엔 서로에 대한 선입견과 어긋남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런 시간을 잘 지나와서 요란하지 않게 어우러진 그들은 평범한 듯하지만 특별해 보인다.

  처음 보는 조합이어서 어떤 맛일지 궁금했던 할라피뇨 크루아상은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를 편안하게 보듬게 된 그들 그리고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아간 페스츄리 가게에 할라피뇨 크루아상이 없어졌다. 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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