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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y 27. 2022

어머니 달리세요~

양쌤의 another story 15

  초등학생 때 키를 일관성있게 유지중인 나는 이래 봬도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까지 운동회의 꽃 릴레이 담당이었고, 중학교 때 체력장을 하면 1급도 아닌 ‘특’을 받았던 몸이다. 몸 쓰는 일은 뭐든 자신 있던 나였는데 아… 망신 또 그런 망신이 없었던 그 날.    


 아들의 유치원 운동회 날이었다.

 아들보다 내가 더 들떠서 참석한 운동회의 첫 순서는 엄마들 달리기였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빅매치였다. 선생님들이 팔을 잡아끌기도 전에 일어나서 줄을 섰다. 다섯 명씩 출발선에 서서 결승선을 바라보는데 저건 뭐지? 저 멀리 결승선 바닥에 놓여있는 두 개의 치약 세트. 사람은 다섯인데 상품이 두 개뿐이라니. 우당탕탕하다가 헛손질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1등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비장함이 감도는 순간 출발.

  달려라 달려. 오른쪽 제치고 왼쪽 제치고 잡았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허벅지는 묵직한 비명을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한 듯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퀴디치 게임 장면에서 록허트 교수의 잘못된 마법으로 해리의 팔이 고무 막대기처럼 변했었는데 내 다리가 딱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에게 들려서 학부모들이 앉는 스탠드에 눕혀졌는데 남편, 남편이 없어졌다.

 선생님들이 다리를 주물러 주다 경기 진행을 하러 가고 혼자 치약을 쥐고 뻗어있는 나를 불쌍히 여긴 누군가가 근육 이완제를 먹어라 어째라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정말 고마웠어요~) 하필 내가 달리기할 때 남편은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오고 하필 전화 받을 때 나는 운동장 바닥에 드러누운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니. 일을 처리하고 달려온 남편의 얼굴을 보는데 남들은 못 듣는 말이 나는 들렸다.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도무지 일어서지를 못해 결국 남편에게 업혀서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갔지만 그다지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보니 응급이 아닌 처치를 받아 주사 맞고 약 먹고 드디어 내 발로 걸어 운동장으로 돌아가 보니 운동회는 벌써 마무리하느라 어수선했다.

 우리 아들은 한 번뿐이었던 유치원 운동회를 엄마 아빠도 없이 외롭게 치르고야 말았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아들 손을 잡고 함께 뛰었다는데 아아악!

 아들 손을 잡고 있었어야 할 내 손에 치약이 웬 말이냐! 승부욕, 참 사소한 데만 발동하는 이 죽일 놈의 승부욕! 원장님~ 왜! 왜! 치약을 두 개만 두셨나요? 그냥 선물 주시는 김에 다 주시던지, 차라리 손등에 1등 도장이나 꾸욱 찍어주시지. 치약값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우리 아들 운동회 사진 한 장 없구요. 땅바닥에서 버둥거린 저의 창피함은 어쩌나요!   


 그 후로 나는 달리기 트라우마가 생겼다. 다시는 학부모 달리기 같은데 나서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그게 또 그럴 수가 없는 일이 자꾸 생겼다.

 아들이 다닌 중학교에서는 축제 겸 체육대회 때 엄마들이 떡볶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 먹거리를 만들어 아이들이 실컷 먹을 수 있게 했다. 물론 경기에도 온몸을 바쳐 참가했다.

 엄마들 경기가 시작되자 나는 절대 못 뛴다며 몸을 사렸고 옆에 있던 키 큰 엄마가 얼떨결에 떠밀려 나갔는데 운동장에서 하는 말.

 “나 천식 있는데” 하아…

 “언니 들어와, 내가 뛸게.”

 그 엄마가 뛰다 호흡곤란이라도 오면 어쩌나, 그렇게 나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죽어라 뛰었다가 저번처럼 들려 나가는 게 창피할까, 대충 뛰다가 저 엄마 때문에 졌다는 소릴 듣는 게 더 창피할까 생각하는데 뒤에서 뛰던 엄마가 쌩하고 지나갔다. 앗! 아들 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했다.

  그다음 다음 해, 나는 어쩌다 또 운동장에 섰다.

 장애물 달리기였다. 첫 번째 그물 아래를 통과하는데 아니 애들이 엄마들 지나가면 슬쩍 그물도 들어주고 그래야지, 무슨 유격훈련도 아니고 그렇게 빡빡하게 그물을 잡는지 장애물 달리기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두 번째 허들을 향해 달려가는데 생각보다 많이 높은 허들을 뛰어넘느냐, 아래로 지나가느냐, 허들과 한 몸이 되어 넘어지느냐 생각이 많아졌다. 다행히 안전하고 적당한 선택을 한 경쟁자를 따라 허들 아래를 공략했다(올림픽 아니니 반칙 아님). 매트에서 구르기와 밀가루 속의 숨은 사탕 먹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튼 멀고도 험한 운동장 한 바퀴를 거의 다 돌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어머니 달리세요~~~”

 외치는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아들 담임 선생님이 옆에서 응원하며 같이 달리시는 것 같았다. '그래 진짜 마지막이다' 뛰었다 최선을 다해. 그다음은...

 우리 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도 기억 안 난다. 다리가 달달 떨리긴 했지만 그저 아무 탈 없이 잘 끝났다는 것만 생각난다.   


  며칠 전, 브런치에서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아이들의 운동회에 대한 기억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약간은 뭉클하기도 한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 열심히 애들 키웠네’ 셀프 칭찬을 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애들 운동회에 대한 추억인데 애들 기억은 별로 없고 다 내가 뭘 한 기억만 있다는 거. 푸하하하하! 세상의 중심은 ‘나’인 건가?

  이젠 애들이 다 커버려서 내가 쫓아가 거들고 말고 할 일이 없다. 축제에 엄마들 와서 도와달라고 할 대학교도 없을 테고 애들도 친구를 초대하면 했지 엄마를 초대할 리 없다. 너무 편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주 조금은 서운하고 쓸쓸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오라 안 하면 못 가나? 내가 그냥 가면 되지. 대학교 축제가 얼마나 재밌는데. 스탠딩 공연도 문제없고 떼창도 할 수 있다.

 내년 봄엔 운동회 대신 애들 학교 축제나 가 봐야겠다. 축제 때 어느 가수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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