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
한창 삶을 살아내기 싫었던 적이 있다. 올해 초였다. 정말 크게 온 번아웃이었고 친구 덕분에 잘 이겨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편입을 앞두고 토익시험을 치렀어야 했다.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와줘야 하는데, 공부가 너무 하기 싫더라. 그래서 '공부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았고, 공부를 안 하니까 성적은 안 나오고 망했다는 생각만 자꾸 들더라. 불안감이 쌓여서 무기력감이 되고 다시 번아웃이 되었다. 하나의 눈덩이를 불리는 것 같다. 다시 번아웃이 찾아와도 상황은 똑같다. 내 앞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지 않으면 회피일 뿐이다. 이런 회피는 거듭할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살 바에야...' 그런데 삶을 바꿀 시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때 번아웃을 벗어났던 경험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번아웃을 극복했더라?'
그때 어떻게 삶의 의미를 되찾았지?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찬란한 무언가가 펼쳐질 것이라 상상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너무 퍽퍽해서 살기 싫지만, 오늘만 견뎌내면 내일은 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래, 살아있어야 뭐든 하지.
삶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삶을 놓치기 싫더라. 그리고 그 이후로는 뭐든 괜찮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더 중요해졌으니까. 당장 오늘 외워야 했을 영어단어? 내가 내일을 포기한다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당장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무책임하고 싫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오늘 하지 않았으면 내일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내일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을 나보다 앞서 얻은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우리 집은 어릴 때 형편이 좋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고,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다. 갑자기 아버지는 빚이 많아지셨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셨다. 하루 온종일 일을 하고, 바쁠 때는 일주일 내내 일을 하셨다. 정말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비교적 아이를 늦게 낳으셨다고 한다. 아이는 셋이고, 모두 어렸다. 얼마나 고단하고 무거운 삶이었을까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버지의 고단함을 직접적으로 깨달은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지금으로도 약 2년 전인가? 야자가 끝난 나를 태우고 집에 가던 중에 은행 근처에 차를 세우시더라. 자주 있는 일이라 차에서 기다렸는데, 아버지가 로또를 사 오시더라. 나는 물었다.
나 : 왜 로또를 사?
아버지 :...
나 : 로또를 살 돈으로 적금을 해.
아버지 : 아빠는 이걸로 일주일을 살아.
나: 뭐? 당첨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잖아.
아버지 : 그걸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버텨.
나 :...
아아. 더 이상 아버지를 책망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정말 크고 어른스러워 보였는데, 힘든 건 매한가지였더라. 아버지는 이 일주일을 버텨내면 다음 주에는 로또에 당첨되는 삶을 꿈꿨기 때문에 사시는 듯하다. 아버지의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그 작은 종이를 뺏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느꼈다. (그래서 그런가? 그 이후로 내게 아버지는 좀 애틋하다.)
아직도 구매하시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선택을 응원하기로 결정했으니까. 만약, 지금도 사고 계신다면 건승을 빕니다.
삶은 매 순간이 고단하고 그 속에서 가끔은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이유는, 삶의 이유는 본인이 정한다. 본인을 삶에 매어놓을 매개체를.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로 자신을 삶에 묶어놓아 보자. 일단 살고 보자.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다. 내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디 모두를 꼭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잘 살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