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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Nov 29. 2021

엄마 이야기_투석 시작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안부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엄마의 건강 상태를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서울대 병원에 몇 번 동행한 후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몇가지 이유로 엄마는 입원도 몇 번 하고, 투석을 준비하느라 동정맥루 수술*도 받았다. 

*동정맥루 수술은 혈액 투석에 필요한 수술이다. 동맥과 정맥을 이어주어 정맥을 확장하는데 보통 손목 부위 혈관을 이용한다. 

 엄마는 삶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었다. 힘겨운 삶을 살아왔는데도 그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했다. 하긴 막냇동생이 고작 14살이었다. 막냇동생이 결혼해서 손자를 볼 때까지는 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너무 큰 욕심이라면 결혼하는 것만이라도, 대학 졸업하는 것만이라도, 대학 입학하는 것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 그래도 대학 입학하는 건 봤다. 


 처음 다낭신 진단을 받고도 2년 정도 별 탈없이 관리를 잘했다. 신장수치는 괜찮았다. 엄마 마음은 괜찮았을까? 나처럼 무심한 딸은 엄마 속 천 갈래, 만 갈래 가지의 0.1%도 모르지 않았을까.

 당시는 상당히 큰일이었던 것 같은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웠다. 뭐가 원인이었더라. 크게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이것저것 헷갈리고 흙 속에 묻힌 감자 줄기 뽑아내는 것처럼 여러 가지 원인들이 줄지어 끌려나온다. 바람이었나? 아무래도 이쪽이 아닐까 싶다. 


 뭐…… 지금 와서 엄마, 아빠의 잘잘못을 가릴 때는 아닌 것 같다. 엄마는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투석을 시작했다. 투석은 환자 상태에 따라 주 1회, 2회, 3회 실시한다. 한번 투석하는 데는 4~5시간 정도 걸린다. 엄마는 상태가 나빠서 시작하자마자 주 3회로 시작했다.


 굵은 주사 바늘을 꽂을 때 엄마는 눈을 꼭 감았다. 온몸이 서늘해졌을 거다. 시퍼런 칼날이 심장을 베는 듯한 느낌이 들었겠지.

 이렇게 투석을 2, 3년 정도 하다가 이식 받으면 된다고, 투석을 하지 않고 이식을 바로 받는 것보다 투석을 몇 년 하고 이식 받는 게 더 좋다고 아는 사람이 얘기해줬다며 엄마는 희망적으로 말했다.

 몇 년 뒤, 그 말을 해준 사람을 원망했다. 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뭣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남한테 충고를 해줬고, 멍청하게 자기는 그 충고를 들었다고. “투석하기 전에 이식할 수 있으면 이식하는 게 좋았을 텐데”하며 후회했다. 그걸 후회할 당시에는 후회할 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다.


 엄마가 투석을 시작하고 나는 두 동생을 앉혀놓고 엄마가 건강이 많이 안 좋으니 속썩이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때 엄마가 몇 년 안에 돌아가실 줄 알았다. 내 착각이었다. 속썩이지 말자고 말한 이후로 그 말을 한 내가 엄마 속을 제일 많이 썩였다. 


 엄마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체질이었다. 화가 많은 사람이었고 감정 표현에 능숙치 못해서 그 어떤 감정보다 분노 표현을 자주 했다. 엄마 성격을 아는 이모들은 “니 성격을 바꿔야 니가 산다”라고 했다. 그 말도 맞지만, 엄마 같은 삶을 살았다면 그러기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지금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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