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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죽는 사회, 각자도사 사회

각자도사 사회 후기

by 밸런스

죽음, 좋아하는 주제이지만, 사회적 맥락에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일반적인 생각에 의문을 던진다.


나는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말이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그냥 집에서 자다가 죽으면 좋지!”

아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사람은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도 엄마나, 아는 사람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남에게 민폐 끼치다 죽을 마음은 없으니까.


그런데 과연 엄마가 원하는 죽음처럼 집에서 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엄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2020년 기준 사망자의 75.6%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저자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의료보험을 이야기한다).


24.4%에 해당할 때 과연 어떤 돌봄도 필요 없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따라온다. 돌봄이 필요한 경우 누군가는 노인을 돌봐야 할 것이다. 그럼 누가 노인을 돌보는가? 저임금을 받는 요양사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들의 아내 혹은 딸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병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는 사람이 말한 안락사 혹은 존엄사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혈관이 지나가는 폐 같다. 혹자는 환자가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개인의 맥락만 고려하면 되는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의료적 판단(생존 기간, 완치 가능성, 생명 존중), 법적인 문제(관련 법 조항 해석의 문제), 보호자의 생각 등등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1부에 많은 부분이 법원의 판결,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보호자의 관계 등등 다양한 관계에 관해 말한다. 그런 관계들에 관해서 길게 말하는 이유는 환자의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면서 동시에 다른 다양한 맥락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일 테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은 “죽음이 대학 입시 혹은 취업 같은 것인가?”였다. 이상적인 죽음 모델이 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다, 죽음으로서 주변 사람에게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받게 되는 것일까? 과연 이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아 서울대에 가게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시험을 볼 자격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마저 패배자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삶이 불평등하면 할수록 주사위 놀이는 '아찔한 모험'이자 '합리적 투기'가 되어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반면, 어떤 주사위를 던져도 누구나 존엄하게 살고, 늙고, 아프고, 죽을 수 있다면 그 놀이는 시시한 장난에 그칠 것이다. (10p)


법학자 김현철이 지적했듯이, 우리 모두는 권리의 주체이지만 권리 행사에는 '사회적 승인(recognition)'이 필요하다. (170p)


의료 관련 문제나 안락사 혹은 존엄사 문제 관심이 많다면 추천해요. 독서 토론 모임에서 지정 도서로 해도 꽤 치열한 공방이 오가지 않을까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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