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릇은 걱정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재채기라도 한번 하게 되면 감기가 오려고 하나? 내가 옷을 너무 얇게 입힌 걸까? 집 온도가 너무 썰렁한가? 집이 너무 건조했나? 내가 비염이 있어 코가 예민한가? 온갖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는 그렇게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가 눈 맞춤이 약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너무나 무지했던 나는 눈 맞춤의 중요성도 몰랐다. 아이의 눈 맞춤이 잘 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잘 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나에게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하는 일은 일부러 신경을 써야 해야 하는 약간은 피곤한 일이다. 평소 책을 읽어 줄 때도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아이의 뒷모습만 볼 때가 많았다. 혼자 놀이하는 아이를 보면 아이 뒤에 앉아 안아주었다. 아이에게 뽀뽀를 해 줄 때도 아이 눈을 보지 않고, 내가 아이 옆이나 뒤에서 얼굴을 돌려 아이 볼에다 해주었다. 내가 평소에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의 말이 늦어질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말 못 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랐다. 몸 놀이는 어떻게 하는지 본 적이 없고, 역할놀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수다쟁이가 되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옆에서 말도 말이 걸어주고, 계속 말을 해줘야 한다는데 말 수적은 엄마인 나는 무기력감이 들었다.
나의 욕심으로 시작된 책 육아는 대 실패를 했다. 책이 많다고 아이가 잘 크는 게 아닌데 그때는 몰랐다. 아이는 알아서 잘 자랄 테니 거기에 보너스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꿈을 키웠다. 우리 아이는 책을 참 좋아한다. 반절은 성공이라고 긍정 하기에는 의심이 든다.
감각발달이 느린 아이들에게는 책을 보는 것이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몰랐다. 사람을 봐야 할 시간에 책만 보게 했던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온다. 비싸게 산 유명 전집들을 속으로 울면서 많이도 버렸다.
혹시 나를 닮아서? 혹시 나 때문에?
엄마가 되고 나니 매일 죄를 짓는 기분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선택이 아이에게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노릇은 어렵다.
잘 찾아보면 잘하고 있는 것 하나는 있을 텐데 늘 그렇게 잘못한 것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아이에게 엄마란 생명줄과 같다고들 한다. 엄마가 아이 옆에 건강히 살아만 있어도 반절은 성공한 육아라고 했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이렇게 애쓰고 있으니 언젠가 나도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