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연습으로 연필 잡는데 거부반응이 적어졌다. 이렇게 해나가면 되겠구나 안심이 들자, 꼬달이의 언어발달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단어와 동사 두 단어로 말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한 단어 위주로 말하기 일쑤다. 더욱이 내가 무슨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반향어 및 상동 언어가 자주 나타난다.
왜 이렇게 대답 대신 말 따라 하기를 반복할까? 언어치료사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좋은 답을 주지는 못했다. 말을 따라 하더라도 지속적인 언어 자극을 주면서 소거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언어 치료사는 소거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렵다고? 무슨 뜻이지?’
며칠 전에 영유아 검진을 하고 왔다. 단순한 키, 몸무게 재기, 시력검사도 꼬달이의 거부로 수월하지는 않았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자에는 잘 앉았지만, 의사가 청진기로 진료하는 내내 싫다고 강한 몸부림을 해서 애를 먹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아졌다 싶어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의사는 대학병원 가서 정밀 검사를 꼭 받으라고 당부한다.
어지러워진다. 세상이 온통 우리 아이를 ‘자폐스펙트럼’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나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3년 전 받은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 의사가 원망스러워졌다. 처음부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일찍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더 집중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일 다니는 엄마라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안일하게 시간을 보냈던 건 아닌지. 내 마음은 자책으로 얼룩진다.
내 상담 의사는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고 현실을 열심히 살면 된다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내려놔야 한다고.
사실이다. 나는 우리 꼬달이가 또래 수준만큼 잘 자잘 거라 믿고 있다. 자폐든 발달장애든 지적장애든 이제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꼬달이가 또래보다 2년 넘게 발달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빨리 할 수 있다면 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늦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
반향어와 상동 언어를 줄이기 위해선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소리 나는 장난감, 텔레비전, 스마트폰 모두 문제다. 대신 사람 목소리, 자연의 소리, 신체 접촉음이 좋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평소 노출이 없다. 주말에만 틀어놓는 텔레비전도 줄이기로 했다. 차 안에서 집에서 틀어주던 노랫소리도 줄이기로 했다. 그 빈자리는 엄마 목소리로 채우기로 마음먹어 본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기로 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합격 수기를 쓰듯 ‘우리 아이 이렇게 달라졌어요’라고 글을 쓸 수 있는 날을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