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고 나로 사는 법
달팽이 엄마의 숙명
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나인 듯 내가 아닌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좋으면 내가 좋은 것이고 아이가 싫으면 나도 싫은 것이 되었다. 내 삶의 문제만으로도 나는 버거운데 아이의 문제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문제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말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고 버텨냈다.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서 내 품에서 독립하는 날을 나는 어떤 엄마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아이의 느림이 계속되면서 나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앞으로 나에게는 죽는 날까지 내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는 날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달팽이 엄마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모든 부모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있다. 내가 그런 예외의 상황에 해당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잘하는 것이 글쓰기면 좋겠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그것
나는 성장의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나에게는 죽기 전에 끝내야 하는 숙제와도 같은 일이다.
마지막 순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았다면 그래도 잘 살았구나 생각하며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나게 한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데 밀린 숙제들로 전전긍긍하며 개학날이 언제 일지 몰라 초조한 아이가 되었다.
내 초조한 마음을 줄여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이든 시작하자'
내가 해보지 않은 것 중에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가장 적게 받으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바로 글쓰기였다.
이 시간이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하는 시간이라면
많은 선택지가 없어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나는 가설을 세워본다. 글쓰기가 정말로 나도 몰랐던 내 숨은 재주였다면 나의 육아는 운명이 된다. 육아는 운명적으로 내 인생에 꼭 해야만 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를 달팽이 엄마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내가 지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아이는 사랑으로 키운다고 말한다면 나는 사랑의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다. 달팽이 엄마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요구한다면 그건 잔인하다 생각한다. 사랑은 감정이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신뢰할 수 없다. 후일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받았던 시간들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성장을 도와야 하는 이 시간에 나도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무리 긴 여정을 가야만 한다고 해도 난 참고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먼 미래에 아이 옆에 웃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라는 역할에만 충실하며 희생하는 엄마의 삶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평생 엄마라는 직업으로만 살았던 우리 엄마들이 있었다. 우리 엄마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이제 세상은 누구나 엄마가 되지 않는다. 엄마를 선택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엄마를 선택했지만 나를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