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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Jun 12. 2021

물꼬기랑 쭈쭈바

삼척 바다에서,3척


 삼척에 다녀왔다. 삼척. 3척. 이름이 어여쁘다. 인터넷에 어원을 검색해본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 셋이 함께 오르는 지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난 어딜 가든 책과 술과 카페가 어우러지는 여행을 즐겨 들이킨다. 슬픔과 기쁨과 혼란스러움을 인생에서도 여행에서도 늘 함께 느낀다. 크게 세 가지 감정으로 물든 마음과 풍경은 오르락내리락 포물선을 그리며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여행의 기억을 물들인다.






산-기쁨) 삼척에서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 생활>이라는 작품을 폈다. 해수욕장이 표지인 장면에 혹해서, 그리고 일상을 벗어나서 평범을 읽고 싶다는 이유로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고른 책이었다. 삼척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마음이 뻥-뚫리는 파도와 하늘 사이로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분명 추울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동해의 절경에 눈이 팽팽 돌아서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좀 추워도 버티고 싶었다. 파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책의 시작 문구가 인상 깊다. 결혼은 사람들 말과는 달리 안정의 상징이 아니라 불안정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피식 웃게 되고 만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난 ‘안정’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세상은 늘 파도처럼 바다처럼 움직이며 흔들거리고 있다. 과연 저 풍경에 ‘안정’이라는 섬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래도 다시 잘 생각해보면 계속 움직이면서도 동해는 동쪽에 흐를 것이고 서해는 서쪽에 흐를 것이다. 그러니 매일 흔들리는 내 삶과 나의 모습도 작은 집 안에서는 미친 듯 넘실거리며 흔들리고 있겠지만, 지구 전체로 크게 보면 그 자리일 테다. 오늘도 파도처럼 큰 지구 속 작고도 작은 나로 존재함을 바다 앞에 감사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작가님이 쓰신 부부간의 집안일 분배와 성관계에서의 마음가짐, 그리고 외도하고픈 마음에 대한 것들의 솔직한 글에 감탄하고 탄복한다. 작가님은 진지한데 익살맞고 유쾌하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글 단련에 앞서 작가님처럼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한다. 책을 한 줄 읽고 삼척의 파도를 한 번 바라본다. 높이 올라섰다 이내 낮게 부서져 흩어지는 파도를 본다. 결혼생활이든, 그저 인생의 어떤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든, 늘 올라가고 내려가는 구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도 저러한데, 미물인 나는 더 그러해도 괜찮다, 정말 괜찮을 것이다- 라며 바다와 파도로 마움을 추스른다. 느껴지는 공기의 내음이 평화로웠다.





강-슬픔) 저녁밥을 먹으러 항구가의 아주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 이름은 “물꼬기.” 오타가 아니다. 정말로 물고기가 아니라 물꼬기. 그렇다. 수많은 맛집 리스트 중 오로지 작명 센스가 귀여워서 이 집을 택했다. 가게는 아주 작고 소박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음식과 소주가 들어가니 떠나보냈던 나의 슬픈 마음들이 평화를 깨고 마음의 힘줄을 조였다. 근래의 힘든 일들을 잊기 위해 마셨던 강의 물색 같은 많은 술들을 떠올린다.


  오늘의 안주는 대게라면과 물회, 그리고 생선구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생선구이와 회와 밥이 세트인 정식을 시켰는데 술에 취해 가다 보니 도저히 라면 국물 없이는 자리를 파할 수가 없었다. 왜 대한민국의 애주가는 서울의 한강에 가도 결국은 라면을 먹고 말고, 바닷가에서 수조에 떠 있는 대게를 바라보고 있어도 결국은 라면을 시키게 되고 마는가. 라면과 음주의 미스터리 한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비척비척 술집을 나섰다.


 술과 라면에 취해서 배가 가득한 항구 앞에 오래된 슈퍼를 들렸다. 얼큰히 취한 관광객을 향해 마음대로 부르는 가격일지 모르는 비싼 쭈쭈바를 샀다. 쭈쭈바 하나가 2500원이었다. 그런데 그 소다맛 쭈쭈바가 너무 맛있어서 울 것만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바닷가에만 오면 불러대는 ‘여수 밤바다’를 ‘삼처억 밤바다~’로 개사해서 큰 소리로 불렀다. 밀려오는 삶의 억울함 같은 것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인생이 요즘 참 마음대로 안 된다. 부모님은 안 평범하시고, 나는 평범을 원한다면서도 자꾸 안 평범한 일들을 벌여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여수 밤바다 노래가 갈수록 구슬퍼진다. 수조에서 대게 한 마리가 탈출을 준비한다. 마치 내 노래가 짜증 나기라도 한다는 듯 수조 가장자리에 한 다리를 걸치고 삿대질 비슷한 것을 한다. 쳇, 저도 생명이라고. 도망쳐 나오는 대게를 다시 수조 안으로 밀어 넣으려 나오던 가게 아저씨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대는 나를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잠깐 웃으셨다. 눈이 이초 정도 조용히 마주쳤다. 나도 별 수 없이 빙긋 따라 웃어 보였다.


이상하게 삼척의 표정으로 기억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막막하고 외로워 보였던 어떤 표정. 그래서 슬픈 표정이었다.





바다-다시 혼란)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카페 어나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가 눈앞에 흐르던 카페. 바닷가가 정면으로 보이는 통창 뷰 카페 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강릉이나 속초가 아니라서 그런가. 주말인데도 나른하고 안온한 공기가 흘러서 맘이 조금씩 따뜻하게 차올랐다. 그 고요함이 정말이지 좋았다. 따뜻한 초코 라테는 바닷바람에 내쳐진 볼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통창과 하얀 테이블, 하얀 의자가 있는 작은 카페. 엽서와 스티커가 팔고 있었는데 색색깔로 다른 물결의 사진들과 파도의 모습, 바다의 모습, 그리고 하늘과 꽃이 섞여 있었다. 바다에 어울리는 소품들이었다. 바다를 한껏 마시고 가득해진 마음으로 바다를 그리며 바다에 관한 시를 썼다. 바다가 좋으면서도 난 자꾸만 슬픈 시가 써졌다. 파도가 하늘로 이어질 듯 모든 걸 앗아간다는, 삶은 결국은 다 썰물처럼 밀려나가고 만다는 그런 시였다.


 요즘 나는 좋을 때도 슬프고 슬플 때는 더 슬프다. 아름다운 바다와 카페를 눈앞에 뒀는데도 울컥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물을 감추려 전화기를 열고 막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카카오톡은 어쩌면 감정을 적당히 속이기에 최고로 좋은 도구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거짓이 깃들 수가 없고, 눈앞에 두고 말하는 이의 눈물은 눈동자의 표정으로도 숨길수가 없는데, 채팅방이라는 것은 모든 나의 마음에 ㅋ 두 개나 하트 하나만 그려 넣으면 쉽게 가벼운 가면을 썼다. 어딘가 이상하긴 하다. 자꾸만 감정이 자주 바뀌는 요즘의 내가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보통 카페 사장님께 친근히 말을 걸고, 이것저것 묻고, 감사합니다- 좋네요-라고 표현하는 타입인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카페의 평점에 5를 그려 넣었다. 친절한 사장님이셨다.


 혼란스러운 일요일이 마저 흘러가고 있었다. 혼란스럽다는 것은, 무언가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무서운 걸까.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내 안의 우울과 기쁨의 비율이 5:5를 넘어서 9:1이라도 되어 버릴까 봐 잔뜩 겁을 내고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겠는 요즘의 감정이 혼란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디, 글쓰기의 단어 선택만이라도 내 마음과 달리 간결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혼란’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내 마음을 이해하기 힘 들것이니까.


아무래도 좋을 낮이었다. 삼척의 바다에게 인사를 고했다.





 여름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의 내가 되어서 나타날게. 파도가 응답하듯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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