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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무해한 나의 콩나물국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무해하고 싶을 때, 콩나물국을 끓인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무해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너무 과하게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려서 먹거리를 탐하고, 패션을 탐하고, 환경과 동물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쓰레기를 마구 생산하고. 그런 태도들이 모여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음식을 참 좋아하고 한 끼 한 끼를 남들보다 더 정성껏 다양한 방식으로 차려먹던 나이기에 사실 먹을 때 고민이 많이 늘었고 먹는 습관부터 바꿔보려 노력 중이다. 축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모른 체 하면서 과하게 육고기를 탐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요즘 많이 반성한다. 가능하면 덜 먹으려고 노력하고, 색깔도 알록달록 예쁘고 영양가도 비슷한 다양한 채소들을 떠올려본다. 빨강은 토마토, 주황은 당근, 노랑은 콩나물!, 초록은 피망, 보라는 가지, 하양은 버섯! 색색깔의 야채들을 올리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요즘 내 밥상은 꽃밭 같고 사진도 잘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나 포장용 기도 덜 나오는 재료와 음식도 선호하게 되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못해도 이런 생각들을 많이 품고 살기에, 나에게 요즘 아주 마음이 편안한 몇 가지 메뉴들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가 콩나물국이다. 간장을 살짝 넣고 끓이면 노랗고 건강한 국물을 내어주는 콩나물. 시장에 걸어가서 준비해 간 다회용 용기에 콩나물을 덜어 사고, 두부 한 모도 담아온다. 그걸로 재료 준비도 끝이고, 영양학적으로도 좋다. 가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떼어내야 할 껍질도 꼭지도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도 하나 나오지 않는 음식들이다. 뒤처리도 깔끔할 터여서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


 뚝배기에다가 다시마를 넣고 5분 동안 끓인다. 끈적한 액이 나오기 전에 다시마를 건져 내고, 콩나물과 소금 다진 마늘 그리고 두부를 넣고 퐈아아아 한 번 끓여낸다. 그리고 썰어둔 파를 곁들이면 끝!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한 그릇에 영양이 많이 담긴 메뉴이고 식감도 좋은 메뉴이다. 콩나물이 아삭아삭 계속 씹히면 씹는 느낌이 충족되어서 뇌가 맑아지면서 행복해진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크게 살도 안 찌고 섬유질도 비타민도 많은 음식이라서 더 좋다. 반주를 자주 하는 나로서는 해장에도 이만한 음식이 없기에 최고다.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콩나물의 잔뿌리라고 한다. 나는 귀찮아서라도 늘 다듬지 않았지만 그래서 늘 콩나물 잔뿌리가 내 눈에 참 귀여웠었나 싶다. 술꾼은 알아서 살 길을 찾는 법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기쁠 때도 아플 때도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대학생 시절 호기롭게 2호점까지 냈던 술집을 결국 내놓고 돌아설 때, 속이 쓰렸다. 그래서 콩나물국을 양껏 끓여서 우걱우걱 먹었다. 콩나물이 아삭 거리며 몸을 굽히고 내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마다, 눈물도 함께 구겨져서 뇌 기억 너머로 잘 삼켜졌었다. 위로도 잘 자라고 색깔도 튼튼해 보이는 맑은 노랑머리를 가진 콩나물이라는 녀석은, 씹다 보면 뭔가 모르게 씩씩해지는 느낌이 드는 음식이었다. 대학교 졸업식 날도, 회식자리에서도, 고기를 과하게 먹고 속이 더부룩할 때면 집에 와서 콩나물국을 끓여서 국물을 호록 호록 마셨다. 기름기가 쏴아- 내려가는 기분이 들면서 축하의 열기에 지나치게 흥분되었던 기분도 나의 위장도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콩나물국으로 속을 달랜 뒤 잠드는 날은 꿈자리도 좋았다.

 




 사실 어렸을 때는 콩나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야채라면 뭐든 크게 좋아하지는 않던 시기였다. 그런데 엄마는 콩나물을 먹으면 키가 콩나물처럼 길게 쑥쑥 큰다면서 계속 콩나물을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때는 어떠한 과학적 상식도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잭과 콩나무’라는 동화를 떠올리며 하늘까지 쑥쑥 자랄 콩나물이나 나를 상상하며 그 말을 믿었다. - 물론 지금은 콩나물이 단백질이 많은 채소여서 키 크는데 제법 은 채소라는 걸 안다 .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골라내고 국물만 떠먹던 나에게 엄마가 해주시곤 하던 콩나물비빔밥도 생각난다. 콩나물 맛이 아니라 달달하고 짠 양념장을 아주 듬뿍 얹어서 먹었었다. 콩나물의 맛을 몰라서 양념장 맛으로 밥과 콩나물을 넘긴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콩나물과 친해진 덕에 결국은 콩나물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 어떤 방식으로든 낯을 터 둔 음식들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몸속 어딘가에서 피어올라와 엄마의 따스한 정과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집밥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하는 거겠지. 혼자서 술도 잘 먹고, 혼자서 콩나물국도 잘 끓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가 해 주는 콩나물비빔밥이 참 먹고 싶은 날이다. 콩나물 맛을 알아도 엄마의 양념장을 듬뿍 넣고 쓱쓱 비벼서 입 한 가득 넣고 싶다.



 무해한 나로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아서, 나도 엄마처럼 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한 콩나물국과 콩나물 비빔밥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무해하고도 사랑이 담긴 좋은 음식이 많으니까, 다 같이 무해한 마음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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