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다. 정말로 ‘아주’ 많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지나가는 그 순간을 잡을 수가 없다. 기록할 시간이 모자라다. 순간적으로 든 마음들을 한 편의 글로 담담히 완성해내는 작가님들의 글에 놀랄 때가 있다. 나는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 뜨거운 감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기억력이 좋은 여자가 못 된다.
메모를 시작했다. 요즘 나와의 채팅방이 카카오톡 중 가장 대화수가 많다. 그런데도 휘갈긴 찰나의 수많은 메모들 만으로는 글이 계속 나아가지 않는다. 난감하다. 그 순간, 그 감정을 벗어나고 나면, 내가 느낀 감정인데도 그때가 오롯이 남아있지 않다. 아쉽다.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그저 흘려보내며 지금껏 살아왔던가. 떠나보내기에 지나치게 얼얼한 감정들이 일 때에는, 영화 <비커밍 제인>의 제인 오스틴이 되어야 하나 생각한다. 청혼하러 온 남자 앞에서도 느닷없이 노트를 펴고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여자. 문장을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여자.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지만, 그것은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또한 그 무엇 하나에도 깊고 진지하지 못했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단 한 가지를 깊게 생각하고, 한 곳에 천천히 머무르고, 한 대상을 지긋이 오래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오는 것들이 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물론 진득이 머물렀다고 여겨지는 시간의 양은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 한 도시에 일주일을 머물러도 모자라고 모자라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고작 한 취미를 육 개월 연속해냈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훌훌 떠나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기본 성향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상황을 만들려고 미친 사람처럼 노력하고 살았다. 어떻게 해서든 고인 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매력적인 다음 스텝이 너무 많았고, 하나하나 다 밟는 것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정말 ‘미친 듯’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을 것이다. 내 안의 모든 열정을 토해내어, 아니 어쩌면 미래의 체력과 행운까지도 끌어 쓰면서 나는 늘 움직여왔다.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가는 거센 물결의 계곡물처럼, 누군가 전원 버튼을 끄지 않으면 쉴 새 없이 물을 위로 쏘아 올리는 인공 분수처럼, 인생의 궤적을 거칠게 그리며 싱싱한 나를 봐달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멈추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머물러 있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계속 움직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겼다. 사주를 보러 가면 늘,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끊임없이 흐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고 대화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릴 때는 몰랐다. 때로는 머무르고 참아내는 일이 더 많은 노력과 인내일지도 모름을. 그저 많이 보고 많이 해보면 그 모든 것이 다 내가 되는 줄 알았다.
물론 내가 해 온 많은 경험들은 나를 무지개처럼 다채롭게 이루고 있고, 여러 가지 인생의 길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겁 없이 나를 내던진 덕에 어떤 사람과도 약간의 접점이 있는 점을 스스로의 좋은 점이라 자부한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에게서도 배울 바가 있다고 나는 확신하는데, 이제는 멈춘 사람에게서 배워보려 한다. 강하게 멈추어 보지 않은 자는 오히려 멈춰보기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큰 바다에 뛰어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날씨가 궂지 않은 날의 바다는 얼핏 잔잔해 보여도 그 안에 어떤 깊고 무서운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바다는 동해에도 남해에도 늘 같은 장소에 있지만,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는 없다..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내적으로 멈추지 않고 일렁이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다.
무엇으로 순간을 멈추고 싶냐 한다면, 요즘은 글쓰기로 시간을 멈추고 싶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지금을 담아내고 싶다. 과거를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가능한 오래오래 글쓰기에 멈추고 싶다. 멈춘 시선 사이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싶다. 정신없이 떠도느라 차마 기록할 시간이 없었던 내 삶을 기록하고 싶다. 쓰고 싶은 주제도, 쓰려고 하는 장르도 이 커다란 지구만큼 다양하고 가득하다.
글쓰기에 대한 욕심과 욕망과 탐닉, 그 어느 사이의 공기를 타고 비가 내린다. 한껏 흥분해 생각을 토해내던 문장과 문단들 사이로 나는 숨을 내쉰다.
음식과 음료를 통해 나를 내려놓는 순간의 힘을 믿는다. 막걸리를 마신다. 먼저 막걸리의 윗 쪽 맑은 부분만을 조심스레 따라내서 마신다. 막걸리를 그렇게나 많이 마셨었는데, 늘 알던 그 맛이 아니다. 막걸리의 진하고 고소한 누룩 맛이 아닌, 맑고도 살짝 쓴 청주의 느낌이 난다. 이 막걸리는 제조되어서 냉장고에 세워진 채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멈추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층이 분리되어 효소들이 내려앉은 그 위로는 오히려 청아한 맑음만이 남아있다.
매력적이다. 흔들지 않고 멈춰진 막걸리에서도 새로운 매력을 본다. 당분간은 막걸리의 제일 윗 쪽 부분만 먹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멈추어서 얻어지는 결과를 그저 담담히, 내 안으로 마셔보려 한다. 멈춤의 청아함을 힘껏 느낀 뒤, 병을 마구 흔들면, 다시 출렁출렁 자유롭게 흘러가는 내가 되기도 할 것이다.
글쓰기에 머물고 문장들에 머문다. 그리고 당신의 글에 멈춰 선다. 나는 일단 열심히 읽고, 진심으로 쓴다. 또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멈춤’을 마신다. 멈춰있는 그 속에서도 마음에 퍼질 격렬한 기포나 화려한 순간의 춤을 글로 기록하고 있을 모든 작가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막걸리는 때로 사람을 센티하게 한다.
아주 맛있을게 틀림없다. 쌀이니까, 많이 아플 때도 한 잔만 마시면 안 될까? 하고 응석 부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