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4번, 정규직 2번. 여전히 아리송한 사회초년생의 길 찾기 프로젝트
"왜 그렇게 인턴을 많이 했어요?"
인턴 4번에 정규직 2번. 누군가 내 이력을 알게 되면, 꼭 건네는 한 마디.
그럼 나는 먼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한 박자 쉬고, 당차게 내뱉는다.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걸 찾고 싶었어요.
때는 2019년, 어느새 대학 생활의 반절이 지난 시간. 앞뒤 가릴 것 없이 놀기 바빴던 순간들을 지나, 못 본 척 미뤄뒀던 거대한 프로젝트를 꺼내야 할 시점이었다.
먹고살 수 있는 일 찾기, 자존심 상할 일 없는 일 찾기,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찾기, 꿈 찾기, 나 찾기.
그러니까 표면적으론 밥 벌어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찾는 일이었고, 마음적으론 내가 즐겁고 뜨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차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자신 있게 출발선에 섰는데, 알고 보니 뛰는 방법을 몰라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사람이 되었달까.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나'에 대해 끄적였다.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거대한 것까지, 나를 구성하는 덩어리들을 하나씩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아래와 같은 것들을 적은 것이다. 사소하고도 유치한,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긴 조금 부끄러운.
누워 있기를 좋아해. 싫증을 잘 내. 지는 걸 싫어해. 그래서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해.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봐. 월화수목금토일 보는 드라마가 있어. 질리지가 않아.....?
나에겐 안타깝게도 꾸준함이란 미덕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런 나에게도 알고 보니 놀랄만한 꾸준함이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반복 시청하는 것.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매일 보는 드라마가 있었을 정도로 드라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내가 왜 이 사실을 간과했을까. 매일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은 결국 즐거움이자 좋아하는 것, 그리고 사랑이다.
그리고 이를 깨달았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대학 영상 연합 동아리 회원 모집글이었다. 지체 없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합격한 후, 얼떨결에 내가 낸 다큐멘터리 기획안이 선정되면서 본격 감독에 데뷔했다. 영상물을 소비만 하던 내가 제작자가 되어 직접 영상을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 의미 있고도 행복했던 경험을 지나, 나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저 '대학생 시절에 영상을 만들어봤어요'라는 추억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 인더스트리에 발을 딛고 일을 하는 방송계 종사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한 방송국의 마케팅 인턴에 합격해, 든든한 상사 밑에서 마음과 합이 잘 맞는 동료들과 함께 또 한 번의 꿈같은 경험을 쌓았다. 이쯤 되니, 그래서 방송국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는 거야?라는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 사실은. 그 이후에 나는 방송국의 유튜브 운영 에디터가 되었다가, 대한민국 대표 IT회사의 브랜드 라이팅 인턴으로 일했다가,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이름을 날리는 대행사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일했다. 그리고, 첫 정규직은 놀랍게도 호텔 리조트의 카피라이터 직무였고, 지금은 강연 콘텐츠 브랜드에서 콘텐츠 전략 &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던 대학생이 어쩌다 뒤죽박죽 커리어를 쌓게 되었을까?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원하는 것의 본질,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갈고닦아야 할 나의 능력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나는 '방송'이 아닌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 수많은 이야기를 '텍스트'로 풀어나가는 것에 탁월한 능력과 열정을 가졌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누구에게 어떻게 잘 전달되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다룰 줄 알아야 했고, 이를 기반으로 보다 큰 맥락과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즉, 나는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의 본질을 찾고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한 선택들을 해온 것이다. 내가 남긴 모든 발자국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존재했다. 그래서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뚜렷한 일관성을 지닌다. 인턴 1년 3개월, 계약직 6개월, 정규직 1년 11개월 차. 내가 쌓아온 경험들을 단순히 이렇게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AI가 빠르게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는 시대에 텍스트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 동안이나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와 불안은 존재한다. 허나, 일에서나 삶에서나 내가 직접 엮어온 이야기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는다. 모든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랑했던 그 순간들을 단단한 기반으로 삼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내가 원하는 형태와 목적으로 쓸모 있게 활용해 내는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나를 응원한다.
1년 차, 6번째 회사.
여전히 앞길은 캄캄하고 걸어온 길은 희미해지지만, 언제나 그랬듯 가장 나답게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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