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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이응 Nov 07. 2024

내가 엑스트라였다니.

늦깎이 주인공이 말씀드립니다.


드라마에는 언제나 주인공이 존재하고, 주인공의 스토리를 더 돋보이게 해 줄 여러 조연들과 엑스트라가 자리한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꾸며진 세계로 빠져들며 마침내 그 세상이 나의 세상이기를 꿈꾼다.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엑스트라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이 세상의 엑스트라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했던 건 초등학교 고학년쯤의 어느 날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했더니 대상을 받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 교장 선생님께서 상을 내렸던 그땐 확실히 내가 바라는 대로 삶이 흘러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겠거니,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세상 전부였던 내게는 사실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나눌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6학년이 돼서야 갑작스럽게 전학을 갔다. 내가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시선을 기대하며 학교로 가는 걸음걸음에 설렘을 더했다. 초등학교 내의 최고참인 6학년 때 전학을 갔으니, 그곳의 아이들의 텃세가 심할 만도 했는데, 여렸고 순진한 나는 그 사실을 간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학 간 날, 나는 '너 잘 나가냐?'라는 허무맹랑한 말 한마디 외에는 어떤 관심도, 호기심 어린 시선도, 질문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나는 한 전학생을 만나고 내 세상에서조차 엑스트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기 중에 한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그 아이는 참 거침이 없었다. 나와 다르게 친구들과 쉽게 친해졌고, 누가 뭐라 하든 자기 할 말은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건 주저 없이 해버리는 사람. '나와 다름'을 하나둘씩 명확하게 인지한 순간부터 그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점점 내 세상에 기웃거리더니 마침내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저 교실에 앉아있는 친구 1, 혹은 7번 정도로 전락해 버린, 그런 세상 속에서 꽤 긴 시간을 살아갔다. 


그렇게 주객전도된 삶 속에서 빠져나와 흔적도 남지 않은 내 자존감을 AS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는 싱겁게도 생활기록부였다. 10년 만에 부모님이 이사를 결정한 후, 본가에 남아있던 내 짐들을 정리하게 되었을 때 유독 눈에 띄던 두툼한 3개의 파일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곳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내가 해온 모든 활동이 담겨있었다. 다양한 상장과 담임선생님이 정성스럽게 남겨준 코멘트, 눈물자욱이 남아있는 성적표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어보면서 내가 모르던, 나도 까맣게 잊어버린 나를 되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피아노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지', '체육은 정말 싫어해서 수업도 빠졌었구나', '글쓰기 활동은 매해마다 적극적으로 했었네', '장기자랑도 매년 나갔었다니'.... 26살의 내가 바라본 10대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더 겁 없고 또렷하게 빛날 줄 아는 아이였다. 어쩌면 내 기억 속의 소심하고 자기주장도 못하고 존재감 없던 아이는 내가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부모님과 타인의 기대에 맞춰 세워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차마 주인공으로 세울 수 없어서 내 세상에 자꾸만 다른 이들을 끌고 들어왔던 것이 아닐까. 나는 원래 '이만큼'의 사람임을 인정할 수 없어서 그 지난한 시간 동안 온전히 내가 주인인 세상 속에서 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처음으로 안쓰러웠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잠깐 머뭇거리겠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완벽한 주인공은 아니다. 매일 넘어지고, 실패하고, 찌질한 감정도 품었다가 어느 날엔 하루종일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그런 주인공.. 정도로 해둘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인정하는데 시간을 쏟다가, 나를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하니 그 과정이 서툴긴 하지만, 딱 '요만큼'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되면서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다. 


엑스트라의 세상을 꿈꾸는 이는 없다. 그리고 분명한 건, 무수한 타인과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엑스트라가 되는 상황을 여럿 마주할 수 있지만, 내 세상에서 내가 엑스트라로 살아간다는 건 오로지 나의 의지라는 점이다. 내가 살아가는 내 세상에서만큼은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망각하지 말 것. 이상 이제 막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삶을 스스로 꾸려나가기 시작한 늦깎이 주인공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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