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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Sep 26. 2024

엘리트와 앨리스

 내가 설계한 모든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사하를 만났다. 완성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완료’되었을 때 가 맞는 표현일 테다. 나는 시나리오를 글로벌 인증 대학에서 G5를 수료하고 유망기업에 취업하기까지 밖에 설계하지 못했다. 더 이상의 시나리오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왔던 모든 것이 완성된 시기였지만 그것은 어쩌면 완료였기에 나는 가장 불완전했다. 그래서 더욱 누군가를 필요로 했었던 것 같다.


 필요로 사하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하와의 만남은 우연이었고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우연한 만남이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난 늘 그런 만남을 바라왔었다.

 내가 사하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종종 만남을 유지해 온 고등학생 동창 친구들 몇몇이 관심 갖기 시작했었다. 우리는 비정기적이었지만 1년에 두세 번은 만나왔었다. 항상 노아가 먼저 연락을 해왔었다. 우리는 노아에게 어떠한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정기적으로 우리를 소집하게 하고 근황을 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날도 노아가 정한 식당에서 우리는 모였다.


    “예쁘냐?”  


 친구 노아의 이 한마디에 나는 몇 초간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진짜 궁금한 것은 연애상대의 미모가 아닐 텐데, 정말 궁금한 것은 내가 만나는 사람의 사회신용등급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건 다음 질문이 되는 걸까?  


    “알터야.”


 나는 동문서답을 했었다. 대부분의 알터는 예쁘니까 어쩌면 적절한 대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런……”


 태오의 짧은 한 마디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나를 베어 버렸다.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든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면 당연히 20대 일 테고 20대 알터는 흔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어떤 사고나 병이 있었을 사람이니까.  

 하지만 사하가 누군가에게 안타까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는 건 싫었다. 대체신체는 생물학적으로 네처보다 우월하다. 개발되어 있는 모든 항체를 다 가지고 있을뿐더러 환경에 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하가 누군가에게 안타까운 사람이 된다는 건 너무나 속상했다. 나는 태오에게 따지듯 물었다.


    “왜?”


    “아니야,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까봐 그런 거지…… 미안해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다른 친구가 물었다.


    “알터는 어때?”


 그러자 노아가 말했다.


    “네처도 못 만나본 얘가 뭘 알겠냐?”


 그 말에 나도 어이가 없어 웃게 되었다. 사실이었다. 사하는 나의 첫 연인이었다.


    “그래도 좋겠다. 알터니까 아무래도 사회신용등급은 높겠네?”


    “나야 모르지……”


 대체신체 구매 비용은 보통 사람들이 지불하기에는 너무 큰돈이고, 사람들은 으레 알터는 돈이 많은 집안의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노아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학교는 어디 나왔어?”


    “서 5”


    “오, 예술대네. 역시 부자.”


 노아는 그저 나의 연인이 부자 이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정말 부자인지 확인하고 싶은 건지 몰아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는?”


    “일본에서 살았다고 들었어. 사고도 있었고……”


    “아, 사고가 있었구나. 어떤 사고인데?”


    “버닝게이트”


    “아, 그랬구나. 그래도 부럽다야.”


 ‘그래도’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알터라도? 아니면 어찌 됐던? 더 이상 따지고 들었다가는 분위기만 나빠질 거 같아 그냥 무심한 척해버렸다. ‘그래도’라는 표현 하나에 마음이 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열등한 존재가 우월한 존재를 역설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노아는 궁금증이 대충 해결되었는지 이내 알터가 된 고무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만나면 늘 똑같은 대체신체 이야기이다. 오랜만의 만남에 신이 난듯한 노아는 우리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니 글쎄, 우리 작은 고모 얘기 자주 내가 했었잖아. 고모부가 작은 철강 공장 사장인 그분 말이야. 아니 고모부가 췌장암 말기였어. 그래서 대체신체를 구매하게 됐는데, 알다시피 노인네 대체신체는 안 팔잖아. 그래서 알터가 됐는데 이 노인네가 글쎄 우리 또래가 된 거야. 고모는 초혼이었지만 고모부는 재혼이었거든. 고모부가 원래 고모 보다 거의 스무 살 더 많았어. 근데 어느 날 젊은 애가 된 거야. 근데 고무가 결혼할 때 이미 고모부에게 아들이 둘 있었거든. 이미 출가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사실 거의 누나뻘 되는 엄마가 생겼던 거지. 근데 이번엔 남편이 애가 된 거야. 웃기지 않냐? 그런데 이 노인네가 심지어…알지? BK2045, 그걸로 한 거야. BK2045는 진짜 알터 티가 안 나잖아.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진짜 고모가 아들이랑 사는 줄 안다니까?”


 그러고도 노아는 고모의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속사포처럼 떠들어 댔다. 노아는 만날 때면 항상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뚝뚝한 우리들 중에 노아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알터가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 지금이 불편했다.



    “넌 대체신체를 고른다면 어떤 모델로 고를 거야?”


 언젠가부터 노아의 고모얘기에 집중하지 않는 나에게 노아는 물었다.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투수?”


 나의 엉뚱한 대답에 노아는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니, 아무도 관심 없는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런 커스터마이즈 모델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노아는 어떤 모델을 아니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막연했던 영생의 삶을 나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나는 야구를 즐겨보았다. 대체신체가 판매된 이후 모든 스포츠의 인기는 식었지만 어쩌면 나는 네처의 야구를 마지막까지 좋아했던 팬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왼손투수가 멋져 보였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마냥 왼손잡이가 멋져 보였다. 나에겐 어색하기만 왼팔로 멋진 투구를 하는 투수를 동경하였다.


 나의 대답에 흥미가 없었는지 노아는 태오에게 말했다.


    “근데 태오 너는 왼손잡이잖아. 그거 알아? 왼손잡이는 알터가 되어도 왼손잡이래.”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뭔가 그럴 거 같긴 했다. 하지만 태오는 의외의 말을 했다.


    “난 알터가 되지 않을 거야.”


    “될 수 없는 건 아니고?”


 노아가 따지듯 물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들 중 대체신체를 구매할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기가 생겼는지 노아는 태오에게서 꼭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죽었어. 그런데 누가 널 대체신체에 이식한 거야. 너는 눈을 떠 보니 이미 알터가 된 거지. 그렇다면 넌 어떤 모델로 태어나고 싶어?”


 태오는 고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시, 나로.”


 짜증이 난 표정의 노아가 말했다.


    “자기애가 대단하네. 야, 어떻게 지금 니 몸으로 태어나냐? 물론 지금 그런 기술도 없지만, 네 유전자로 더미를 만든다면 그 더미에 이미 정신이라는 게 생겨버리지 않냐? 그 정신은 너와 똑같은 거라고 할 수 있냐? 그건 살인 아냐?”


    “그렇겠네.”


 태오는 노아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래 보였다. 태오는 언제나 한결같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사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어쩌면 노아의 고모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하는 유독 가족과 유년시절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 또한 사고가 있었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사하에게 좋은 기억이 아닐 거라 생각해서 먼저 묻지 않았었다. 생각해 보면 사하도 나의 과거와 가족에 관련해서 묻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이고 의미인 것일까?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내가 사하의 과거까지 사랑할 필요는 없지 않나? 지금 내 눈앞에 존재하는 사하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은 언제까지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늘 사하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말들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내가 사하를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어쨌든 사하를 지켜주고 싶었다. 불완전한 내가 완전한 사하를 지켜주고 싶었다.


 우리는 또 보자고 말하며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땐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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