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3학년이 되었을 때 태오를 만났다. 생각의 방향을 읽기 힘든 특이한 눈, 창백한 피부에 항상 하얀 티셔츠만 입고 있던 그 아이는 사실 그렇게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쟤가 걔야.”
어느새 나의 옆에 온 친구가 말했다. 맥락 없는 이 말을 난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저 아이가 태오구나’
태오는 우리 중학교의 성취도 1위의 학생이었다. 단 한 번도 1위의 권좌를 빼앗겨 본 적이 없었다.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서 이름만 알고 있었다. 태오의 깨끗한 옷이 특별해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하금테 안경까지 특별해 보였다. 나는 태오의 앞자리에 앉았다. 자리라도 태오보다 앞서고 싶었다. 물론 태오는 신경 쓰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태오는 지켜볼수록 특별한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늘 말이 없었지만 학우들이 말을 걸면 변성기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이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것은 대화의 형태는 아니었었다. 질문에 대한 맥락에 맞는 정확한 답변, 딱 거기까지였다. 자신을 숨긴다고 하기에는 어떠한 질문에도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AI도 저렇게 재미없는 답변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모두가 태오를 존중하였고 나 또한 그랬다. 선생님은 항상 태오를 ‘우리 태오’라고 불렀다. 태오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다.
태오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방과 후에 같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던 내가 어쩌면 태오와 가장 친한 사람일 것 같았다. 친하다는 표현이 과장되었을 만큼 애매한 관계였다. 태오는 무색무취의 섬 같은 존재였다.
고등학교 1학년 스승의 날에 나는 학교에서 마주친 태오에게 중학교에 찾아가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찾아가는 클리셰를 거부할 캐릭터는 아니었다.
태오와 함께 중학교에 찾아갔을 때 팔불출 아줌마 선생님이 태오를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의 자랑 우리 태오가 와줬구나!”
태오와 나는 마치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태오의 옆에 있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학교에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고등학교에서도 학업성취도 1위의 태오를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태오는 서울 1 대학에 입학했다. 우리는 태오가 뭔가 우리는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인문계열 국내 최고의 대학이기는 하지만 나도 서울 3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태오가 특별하다 생각되지 않았다. 막연하게 가늠할 수 없었던 물리적인 태오와의 거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삼삼오오 1년에 두세 번 만날 때면 우리는 태오를 불렀다. 태오는 약속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우리와의 약속이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혹은 마침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에 약속이 없었을 뿐이었을까?
친구들이 태오를 부르는 이유를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정말 친하지도 그리고 지독하게 재미없는 그 아이를 부를 이유는 사실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언젠가 태오가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이룰 것 같았다. 그때까지 태오를 지켜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이룰 태오의 친구 혹은 지인으로 계속 남고 싶었던 걸까?
가끔 만나는 태오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 에는 어린이 수용 시설에서 감정이 제거되는 실험을 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인자하게 웃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태오를 볼 때면 항상 그 만화의 그 인물이 생각났다.
우리 태오는 네오KKK 우두머리이자 반알터테러 주동자가 되어 티브이에 나오고 있었다. 티브이에 나온 태오는 내가 처음 태오를 만났던 날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섬 같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