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찬우 Sep 26. 2024

무색무취

 삼삼오오 만남을 유지했던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티브이 봤어? 태오 나온 거 봤어?”




 친구들과 나는 군인들에게 취조를 받게 되었다. 태오의 검거 다음날 오전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가 계엄사에서 왔었다. 나를 취조하겠다고 미리 전화까지 주는 걸로 봐서 이미 나와 친구들은 이번 테러와 무관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도 아닌 군인들에게 취조를 받게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오후 2시에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생각할까 고민했다. 하얀 셔츠를 꺼내 입었다가 다시 걸었다. 항상 하얀 옷을 입었던 태오와는 다른 옷을 입어야 했다. 나는 하늘색 셔츠를 꺼내 입었다.


 오후 1시 40분 정도가 되었을 때 월패드가 켜지며 군인의 얼굴이 비쳤다.  


    “네, 나가겠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다. 긴장한 내 모습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다. 막상 나를 데리러 온 군인들의 표정에서 일말의 진중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열어놓은 뒷문 안쪽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승차감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은 의자가 불편했다. 어쩌면 내 마음이 더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 처음으로 군용차를 타고 계엄사로 이동하였다. 군용차는 군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를 탔던 기억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이 처음으로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중일 거다. 특별한 이 경험이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어쩌면 나와 태오와의 관계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엄습해 오는 긴장감을 들키기 싫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딱히 갈 일없는 19 구로 이동하는 창 밖의 풍경이 낯설었다. 어느새 차량이 없는 언덕길을 오르고 겹겹의 바리케이드를 통과하여 임시 계엄사 앞에 도착하였다. 눈앞에서 이동하는 군인들이 여기가 군대임을 알게 해 주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군복이 위압감을 준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나 빼고 모두 군복을 입고 있으니 여기는 단 한 명의 내편도 없는 것 같았다.  


    “내려서 저를 따라 이동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군인의 딱딱한 말투가 한층 더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리고 전자 소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을 지나 나는 계엄사 안으로 들어갔다. 미적 요소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콘크리트 통로를 한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니 사방이 온통 흰 타일로 시공된 몇 개의 공간이 나왔다.  


    “소지품 모두 두고 들어가십니다."


 군인이 열어준 육중한 철제 프레임의 유리문안의 공간은 그저 하얀 공간이었다. 고정된 스테인리스 재질의 책상과 접이식 의자만 있을 뿐 바닥, 벽면, 천장 모두 하얀 공간이었다. 심지어 별도의 조명 기구도 없는 주광색 발광 천장은 나를 하얀 공간의 오점처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책상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대략 5분에서 7분 사이의 시간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짧은 그 시간이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 제발 누구라도 들어와 주길 바랐다. 그 마음이 더 간절해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노크도 없이 한 군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남자는 군더더기 없는 동선으로 의자를 빼고 앉았다.


    “계엄령에 따라 당신의 모든 생체정보가 스캔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강태오 씨와 정기적으로 만난 이유가 뭡니까?”


 처음 그 군인이 들어왔을 때는 그가 반가웠다. 시선을 둘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나에게 최소한의 인적 사항조차 묻지 않았다. 심지어 태오와 나의 관계도 묻지 않았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으니 질문에만 솔직히 대답하라고 하는 압박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친구들과 한 번씩 만남을 가질 뿐입니다.”


 어느새 나는 나를 변호하고 있었다.


    “강태오 씨는 과거에 테러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테러뿐만이 아니라 반알터적인 내용의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 모두 태오가 반알터성향을 가지고 있을 줄 몰랐을 겁니다.”


 2주 전 태오를 만났던 날, 태오는 알터가 되지 않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하진 않았다. 사소한 그 말이 어떤 식으로든 곡해될 거 같았다.  


    “강태오 씨는 과거에 어떤 일을 주동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고에 휘말렸던 적이 있습니까?”


    “제가 기억하는 건 없습니다. 태오는 평범하고 조용한 친구였습니다.”


 이 대답을 한 순간 후회를 했다. ‘조용한’이라는 단어를 저 군인이 ‘속내를 알 수 없는’ 혹은 ‘음흉한’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도 나와 태오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 그저 태오가 언제부터 테러를 계획했던 건지 아니면 태오의 흠을 찾기 위한 질문들 같았다. 나는 시종일관 ‘모릅니다’와 ‘그런 적 없습니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군인의 표정이 나는 더더욱 긴장하게 했다. 차라리 내가 알고 있는 걸 물어보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강태오 씨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나의 억울한 모르쇠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저도 뉴스를 통해 들었던 내용이 전부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태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저와 친구들 모두 도움드릴 만한 내용이 없을 거 같네요.”


 그렇게 군인은 겉치레 인사도 일어서 나가버렸다.


 어쩌면 나와 태오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인데 태오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취조를 받으며 나도 모르게 점점 태오가 두려워졌다. 왼손잡이 태오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나를 계엄사까지 데려왔던 군인이 어느새 내 앞에 와 있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이 서류는 나가시면서 입구에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계엄사까지는 나를 데리러 왔었는데, 취조가 끝나니 나에게 그냥 내 발로 걸어 나가라고 했다. 억울하다 생각도 되었지만 다시 그 군용차를 타고 싶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류를 받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나에게 서류를 건네어준 군인은 1층까지 나를 따라온 후 자기의 갈 길을 갔다. 나는 혼자 계엄사가 있는 수방사 입구까지 걸어갔다.


    ‘왜 나 혼자 걸어가게 하는 거지. 이 상황이 맞는 건가?’


 나는 속으로 불안했다. 저 앞에 보이는 바리케이드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를 어디선가 조준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해가진 어두운 밤, 내 발자국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어디선가 지그재그로 걸으면 총을 피할 수 있다고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지그재그로 걸어 나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 행동이 우스워 보일 거 같았다. 입구 초소에 서류를 주고 계엄사를 벗어나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 끝났구나.’  




 비슷한 시간에 취조를 마무리한 친구들을 입구 초소 건너편에서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었다. 넉살이 좋은 건지 노아는 오늘 자기 말고 누가 취조를 받으러 왔는지, 언제 끝나는지 같은 걸 물어보았다고 한다. 물론 군인에게서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취조를 마치고 나오며 대충 고등학교 동창들이 같은 시간에 불려 왔다는 걸 눈치챘다고 했다. 노아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으스대고 있었다.


    “두부 먹으러 갈래?”


 우스개 소리로 노아가 말했다. 이 상황을 마치 지루했던 삶에 찾아온 재미있는 이벤트처럼 대하는 친구에게서 태오에 대한 걱정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나 또한 흥분되어 있었다. 마치 나도 시대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분명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태오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나에게 태오는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헤어질 때까지 태오에 대한 이야기만 하였다.


    < 단정하고 깨끗하고 특별한 게 없었던 아이 > 


 우리가 기억하는 태오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무색무취’


 어찌 보면 무색무취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태오는 어릴 때부터 무색무취한 자신의 몸 안에 무서운 것을 키워왔었나 보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다. 별거 아니지만 태오의 가방에 항상 달려있던 열쇠고리 장식물이 생각났다. 철재로 만들어진 소총모양의 열쇠고리였는데 태오의 가방에 항상 달려있었다. 태오는 왜 가방에 항상 소총모양의 장식물을 매달고 다녔던 걸까?


 나는 태오가 걱정되었다. 테러리스트가 아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태오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사하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 없었어? 많이 걱정했어.”


 인사도 없는 사하의 말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반알터테러가 있었고 반알터테러리스트의 친구인 나를 알터인 사하가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연인이 아닌 보호자 같았다.  


    “걱정은 내가 해야지.”


    “난 별일 없다고 말했었잖아. 상업지구에 사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 계엄사에서 무슨 일 없었어?”  


 테러는 상업시설에만 있었기에 막상 알터들이 느낀 공포도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티브이에서 연일 태오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번 테러의 배후인 테러리스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물며 테러리스트의 친구였던 내가 그의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사하는 크게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넌 태오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이런 얘기는 티브이에서 안 나올 거야.”

 

 나는 마치 고대의 비밀을 지켜온 수도승 마냥 으스대며 말했다.


    “글쎄. 이미 끝나버린 폭동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 문제이지 않을까? 과연 반알터테러가 끝난 걸까?”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당연히 테러는 진압되었고 마치 내가 테러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 마냥 고취되어 있었다. 사하가 느끼는 감정은 테러의 진압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태오가 붙잡혔는데 또 테러가 일어날까? 생각했다. 어느새 나는 태오를 테러의 주동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나도 그런 편이라고 인정하지만 사하와 나는 예민한 관점이 달랐다. 내가 너무 미시적으로 예민했다면, 사하는 거시적으로 예민했다. 사하의 관점이 더 어른스럽고 성숙해 보였다.


 사하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작고 나약한 존재, 사하에게 걱정과 보호를 받고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태오라는 커다란 존재에 나를 투영하고 싶어 하는 철부지 어린아이 같아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이전 0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