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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파 마르죠 Oct 07. 2021

아름다운 나의 아버지 3

무서운 아버지 -돼지몰이 사건

아버지에겐 생계를 위한 전쟁터 같은 귤 과수원이 내게는 그냥 놀이터였다. 5월이 되면  향기로운 하얀 귤꽃 향에 취해 과수원길을 걸어다녔다.  을이 되 귤 수확할 철이 되면, 지천에 깔린 귤을 까 먹 바빴다. 귤 소믈리에가 되어 맛있는 귤을 가려내  오렌지 빛 살만 도려내어 쪽쪽 빨아먹고 맛없는 건 내던지기 게임을 했다.


 부모님은 돈을 따로 주지 않았다. 과자나 엿이 먹고 싶으면,  수원에 들어가 돌을 들어올려 지네  머리를 눌러  잡았다. 잡은 지네를 까만 비닐봉지에 넣고 동네의 유일한 슈퍼에 가지고 가서 엿을 바꾸어 먹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을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하천에 들어가 멱을 감고 개구리 올챙이 소금쟁이를 잡으며 놀았다. 제주 햇빛에 그을리고   또 을려서  피부는 거의 아프리카 원주민 수준이었다. 제주시에서 공부를 하다 방학을 맞아 과수원에 온 오빠들은 시커멓고 바싹 마른 나를 들어올리 "아프리카 깜순이" 라고 놀렸다.


 부모님은 귤밭에 가끔 약을 치셨다. 내 키보다 큰 커다란 빨간 고무통에 약을 중화해 넣고  조금씩  덜어 아버지 등에 지고 다니면서 약을 치셨다. 그 빨간통에 들어있는 이 바닥에 가라앉지 말라고 아버지는 내게 막대로 약을 계속 저으라고 하셨다. 키가 닿지 않아 돌 쌓아 그 위로 올라가서 막대로 약을 저었던 기이 난다. 아버지가 눈에 으면 딴짓하다 아버지  인기척이 나면 재빨리 곤 했다.


부모님은 귤이 노랗게 익으면 귤을 따서 크기별로 구분해 콘테이너에 넣어 트럭에 싣고 팔러 가셨다. 난 그 시간을 좋아했다. 해방의 시간이다. 버지는 키우고 있는 돼지가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는 미션을 주고 가셨다. 물론 나는 지키지 않았다. 똥 돼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밖에 나가 친구들과 실컷 놀고 들어왔다. 부모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돼지우리로 가 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돼지가 없다.

"아니, 이 놈의 돼지가 어디 갔지?"

이 돼지가 돼지우리 담벼락을 헐고 도망갔다.

"난 이제 죽었다." 일단 죽음을 면하기 위해  과수원을 다 뒤지고 다녔다. 그 날 따라 과수원이 우주보다 더 넓어 보였다. 무서운 아버지 얼굴이 눈 앞에서 어른거려 눈물. 콧물 그렁그렁진 채로  돼지 찾아 삼만리. 과수원을 헤매고 다녔다.


순간 묘책이 떠올랐다. 단 과수원 끝 가장자리로 가자.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까지 냅다 뛰었다. 긴 막대를 잡아 들고 올라오는 돼지를 몰아 돼지우리로 넣는 작전이었다.


 제발 나타나라. 보인다. 까만 돼지가 코를 벌름거리며 뒤뚱뒤뚱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이 때다.  장대를 들고 돼지를 몰았다. 나보다도 큰 덩치의 돼지를 몰았다.그렇게 몇 시간동안 돼지와의 사투를 벌이며 돼지를 몰아 돼지 우리 속에 들어가도록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무너진 담벼락을 쌓아 올렸다. 어디서 나온 괴력인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돌담을 쌓아 올렸다. 이렇게 돼지몰이 사건은 나의 침묵 속에 가족들에게는 비밀스럽게 묻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내가 초 2의 여린 소녀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아버지를 무서워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외출하시면서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라는 아버지의 을 거르고 나가서 놀다가 아버지한테 걸렸다. 친구 앞에서 맞았다. 나는 맞는것보다 친구가 앞에 있다는 게 더 챙피하고 싫었다.  다른 친구들한테 말해서 놀릴까 봐 싫었다. 내 걱정대로 알려지고 말았다.  후로 친구들이 내 뒤에서 수근거리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 화나면 아무도 못 말렸다. 물건을 때려 부수고, 어린 우리를 팬티 바람으로 내쫓는 일이 예사였다.  가슴에 한이 맺힌 게 많아서,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는 걸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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