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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얼 Jul 06. 2022

보름달

할머니

이른 아침 마을 중간쯤의 큰 나무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이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울력이 있으니 동네 어디로 모이라는 방송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울력이란 게 있었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마을 청소도 하고 근처 뒷동산에 풀도 베고 하는것이다. 집집마다 한 명씩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고,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집은 거의 대부분 할머니께서 나가셨다. 어린 나이에 할머니가 울력하러 나가시면 마냥 신이나 이제나 저제나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할머니께서 힘들게 일을 하고 오신다는 것을 나중에 중학생쯤 되서야 알게됬지만.


할머니께서 울력 나가신 날이면 마루에 앉아 대문을 바라보고 할머니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이유는 항상 먹을걸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피곤하게 일하고 오셨을 텐데 나와 내 동생은 오로지 먹을 거에만 관심이 있었다.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할머니께서 점심으로 드셨어야 할 빵을 우리에게 주려고 바지 주머니에 넣어오셨다. 그리곤 주머니 안에서 뭉개진 보름달 빵을 꺼내 반으로 나눠주셨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 기억이 떠올라 국민학교(초등학교) 앞에서 보름달 빵을 사 먹어봤다. 뭉개지지도 않고 깔끔한 모양이었고 할머니께서 준 빵이 아닌 내 돈 내산이라 그런지 기억 속에 있던 그 맛 좋은 보름달 빵맛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보름달 빵은 빵이 맛있던 것보다 그 빵을 기다린 시간이 즐거웠고 할머니의 사랑 때문에 맛있었던 거 같다.


산 밑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살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편의점)로 가는데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가끔씩 할머니가 막걸리를 사 오라고 시키면 나와 동생은 신이 나서 막걸리를 사러 갔다. 예전엔 막걸리 병뚜껑이 지금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막걸리가 발효돼서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숨구멍이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막걸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구멍을 통해 조금씩 막걸리는 마셨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수돗물을 채운다. 할머니는 아셨을 테지만 전혀 혼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막걸리로 술빵을 만들어 주셨다.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막걸리 빵은 정말 맛있었다.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간혹 가다 길거리에서 옥수수빵을 판다. 그럴 때면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막걸리 빵이 생각난다. 사 먹어봤다. 하지만 내 돈 주고 사 먹는 보름달 빵처럼 사랑이 없는 맛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꾸질꾸질한 우리의 얼굴을 침 발라서 닦아주셨다. 모기에 물리면 침 발라 주셨다. 무서워서 화장실에 못 가는 우리를 위해 한밤중에도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 주셨다. 담배를 태우셨는데 담배 이름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청자, 백자다. 당시 200원인가 했는데 할머니께 담배를 선물로 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선물로 드리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렸다. 하루는 동생과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술사가 나와 비누 거품에 담배 연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는 그게 너무 신기했고 할머니의 담배를 몰래 가져다가 불을 붙이고 담배연기를 한껏 마신 다음에 비누 거품에 불어넣으면서 놀았다. 그러곤 혼이 났는지 안 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한테 혼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면 혼나고 있는 우릴 할머니가 말려주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그리운 밤이다. 보름달을 보니 더욱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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