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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얼 Mar 23. 2024

시골 소년의 추억

계절

어린 시절 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하는 길은 항상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했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동생과 나는 그 향기에 이끌려 아카시아꽃 한 뭉치를 따다가 먹곤 했다.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도로도 있었지만, 우리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산속 길로 걸을 때면 마치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고, 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것만 같았다. 돌이 많은 산이었고, 그래선지 우리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돌 사이를 지나다니며 올라서 넘어가곤 했었다. 학교로 가는 길 내내 탐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봄이면 이곳은 개나리가 노랗게 행렬해 있고, 큼지막한 벚나무가 새 옷을 입고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어린 시절 봄은 언제나 특별하고 아름다웠다.


내가 살던 장흥에는 두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 장흥을 관통하는 탐진강, 그리고 우리가 많이 놀았던 '감내'라는 강이다. 찾아보니 금강천이라는 이름의 하천이다. 여름이면 이 강에서 동네 형들과 수영도 하고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어 낚시를 했었다. 이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가족들과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빵빵하게 바람을 넣은 검은색 튜브에 몸을 맡긴 채 물 위를 두둥실 떠다니고, 수경을 끼고 갯고둥(우리는 이것을 고동이라고 불렀다)을 잡았었다. 가끔 축제 같은 데서 이걸 먹기 좋게 뾰족한 부분을 잘라 쪽 빨아먹을 수 있게 해서 판다. 그걸 볼 때면 탱자나무 가시로 열심히 살살 돌려가면서 고둥을 빼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집 바로 뒤에 작은 산이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꼭대기까지 100번은 올라갔다 온 산이다. 그 시절 우리에겐 좋은 놀이터였으며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봄에는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식량 창고였다. 특히 보리 딸기를 좋아했는데 보리 딸기를 찾는 날이면 우리에겐 잔칫날이었다. 가을에는 사슴벌레를 찾아다니는 곳이었다. 요즘엔 사슴벌레를 돈 주고 구매하지만 그땐 뒷산에만 올라가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흔했다. 잡아 온 녀석을 키운답시고 설탕물을 챙겨줬는데 며칠을 못 살고 죽어버리기도 했고, 동생이 잡은 사슴벌레랑 싸움시킨다고 억지로 붙여놨는데 도통 싸움을 안 해서 흥미를 잃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놀다 보면 들판은 황금빛을 잃어가고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나무가 앙상해진다. 저녁쯤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이 어느새 문 앞까지 와있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면 신이 나서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동생과 나는 가장 큰 고드름을 누가 먼저 찾는지 내기를 하곤 했었다. 규칙은 단순했다. 길이가 길면 이기는 것이다. 큰 고드름을 찾기 위해 온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옆 동네에 방앗간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의 지붕은 거의 항상 큰 고드름을 만들어 냈다. 단점이 있다면 그만큼 경쟁이 심해서 빨리 가지 않으면 구할 수 없었고, 고드름을 따기 위해 방앗간 벽을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위험하다며 동네 어른분들의 눈치를 보며 고드름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옛 생각을 하다 보니 시골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에는 사소한 것들에도 재미를 느끼고 단순한 것에서도 행복해했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계절의 변화도 또렷하게 느꼈다. 지금의 복잡한 도시의 생활과 다르게 말이다. 봄 이른 새벽에 퍼지는 아카시아 향, 여름 소나기가 오기 전 공기에서 맡아지는 흙 내음, 누렇게 익은 가을 들판 위로 떨어지는 석양,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평온함 같은 거 말이다. 지금은 노력하지 않으면 옆에 있는지도 모르며 살아간다. 예전엔 가만히 있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계절이 고백했는데 말이다. 그냥 그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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