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혼잣말 8편

아쉬움을 다른 아쉬움으로 덮어씌우지 말 것

by 이양고

나는 물기를 바싹 잃고

바스러져버린 낙엽을 밟아보고 나서야

가을이 어느새 옆을 스쳐 지나갔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서러워하곤 했다.


찬란하고 길었던 여름밤이

다 지나가버리고

코끝이 시려워지고 나서야

여름을 그리워했고,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계절에는

감흥없던 겨울이

짓밟히고, 짓이겨지고,

상처처럼 검은 물로 변해버린 뒤에서야

겨울이 지나갔음을 깨닫고 아쉬워했다.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건

눈앞의 현실에 집중했다는 뜻이기도,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아쉬움을 다른 아쉬움으로 덮어씌우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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