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건

온 세상에서 가장 작은 우주인 것.

by 이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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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외로울 때면 읽게 되는 진통제 같은 것.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을 때 시집을 펼치면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혼자 있는 방에서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적막함이 조금 덜해지는 것. "아, 나만 이런 마음인 게 아니구나" 하며 위로받게 되는 것. 시인이 몇십 년 전에 써놓은 글이 지금의 내 마음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신기한 것.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보다 더 확실하게 마음의 아픔을 달래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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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좋아하는 구절 하나쯤 마음에 새겨두면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것.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걸으면서도 그 구절을 중얼거리게 되는 것.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암송하게 되는 것.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가끔씩 꺼내보는 것. 그 몇 줄의 문장이 하루 종일 힘이 되어주는 것.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 그 구절을 살짝 알려주고 싶어지는 것. 좋은 시 구절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든든한 기분이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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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그때 떨어져 깨어진 자리가 내 자리였을지도 모르지' 하는 말이

입에 맴돌아 그 시집을 결국 찾아보게 되는 것.


누군가 했던 말, 어디선가 본 글귀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견딜 수 없는 것. 그 시를 다시 읽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고 서점을 헤매는 것. 시집을 사서 그 시를 찾았을 때의 반가움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것. 그 시만 읽으려고 했는데 다른 시들도 좋아서 책 전체를 읽게 되는 것. 한 구절 때문에 시인의 팬이 되어버리는 것.





시라는 건 같은 시를 읽어도 그날그날 다르게 다가오는 것.


어제는 별로였던 시가 오늘은 가슴을 파고드는 것. 내 상황이 바뀌면 시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 예전에는 이해 안 됐던 구절이 나이 들어서 읽으니 절절하게 와닿는 것. 첫사랑을 할 때 읽었던 연애시와 이별 후에 읽은 그 시가 완전히 다른 느낌인 것. 시는 그대로인데 내가 변해서 새로운 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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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짧은 글 속에 긴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


몇 줄 안 되는 시에서 소설 한 권 분량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함축된 언어들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풀려나가는 것. 시인이 생략한 부분들을 내가 상상으로 채워넣게 되는 것. 그래서 같은 시를 읽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것. 시 한 편이 내 안에서 수십 가지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





시라는 건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냥 지나쳤을 풍경들이 시를 읽고 나면 다르게 보이는 것. 가로등, 비, 계단, 창문 같은 흔한 소재들이 시에서는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 "아, 시인은 저런 것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며 감탄하게 되는 것. 시를 읽고 나서 길을 걸으면 모든 것이 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내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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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혼자 읽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읽을 때 느낌이 다른 것.


혼자 읽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 같고, 함께 읽으면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연인에게 좋아하는 시를 읽어주고 싶어지는 것. 친구와 함께 시집을 보며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해?" 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시를 읽고도 서로 다른 감상을 나누는 재미. 시를 통해 상대방의 내면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시라는 건 기분에 따라 찾는 시인이 달라지는 것.


우울할 때는 우울한 시인, 그리울 때는 그리운 시인, 사랑할 때는 사랑 시인을 찾게 되는 것. 내 감정에 맞는 시를 찾아서 읽으면 더 슬퍼지기도 하고 더 행복해지기도 하는 것. 감정을 증폭시키고 싶을 때 시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아는 것. 시인들이 내 감정의 사전 역할을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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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외워두면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보물 같은 것.


지하철에서 지루할 때, 잠들기 전 침대에서, 산책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읊어보는 것. 암송하다 보면 그 리듬이 몸에 배어서 걸음걸이까지 달라지는 것 같은 것. 좋은 시 구절을 많이 알고 있으면 뭔가 교양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일기를 쓸 때도 시 구절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




시라는 건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한 것.


시집들이 늘어선 책장을 보면 마음의 양식을 쌓아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새 시집이 나오면 궁금해서 서점에 가게 되는 것. 좋아하는 시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설레는 것. 시집은 얇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소설보다 무거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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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SNS에 올리고 싶어지는 것.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지는 것. 그런데 막상 올리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리나?" 하며 망설이게 되는 것.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시시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한 것. 결국 조심스럽게 올렸다가 반응이 좋으면 뿌듯해하는 것.




시라는 건 직접 써보고 싶게 만드는 것.


다른 사람의 시를 읽다가 "나도 이런 마음을 시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일기장에 시 같지도 않은 글을 끄적여보는 것. 처음에는 부끄럽지만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내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보면서 "이것도 나름 괜찮네" 하고 뿌듯해하는 것.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까지는 아니어도 시를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시라는 건 선물하기 좋은 것.


친구의 생일에 시집을 선물하면서 좋아하는 구절에 줄을 그어두는 것. 연인에게 사랑시를 적어서 편지로 보내는 것. 시집에 쪽지를 끼워두고 "이 시 읽어봐" 하고 건네는 것. 받는 사람도 시집을 선물받으면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드는 것. 함께 읽을 수 있는 시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선물인 것.




시라는 건 나이가 들어도 색바래지지 않는 것.


어릴 때 읽었던 시를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으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르인 것.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맛이 있는 것.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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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결국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복잡했던 마음이 시를 읽고 나면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이 시라는 형태로 정제되어서 더 명확해지는 것. 시인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줘서 고마워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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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는 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위로인 것.

짧지만 강렬하고, 간단하지만 깊이 있는 것. 언제든 내 곁에 있어주는 마음의 친구 같은 것.




시라는 건 그래서 온 세상에서 가장 작은 우주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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