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바랐던 것은 뭔가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는 사업을 운영하는 내내 버거워 하셨고, 그 모습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다짐이 나를 지탱하는 줄 알았다. 첫 직장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영화사에서 보낸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처음 6개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이사 중이었고, 영화는 끊임없이 준비 중이었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본작업은 미뤄졌고, 나는 그저 출근해 사무실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계에 있는 선배들은 주로 일주일에 세 번씩 퇴근 후 술자리를 가졌지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출근 후 늘 기계실에 앉아 엔지니어 선배와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 이야기를 듣고, 기계를 익히며, 사무실에 쌓인 영화 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이 내 하루의 전부였다.
그 시간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노년의 마지막 직업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이 편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작은 급여를 받았지만, 그 생활은 나에게 너무 많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늘 미래를 고민하던 나에게는 과분한 시간이었다.
6개월쯤 지나,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에게 대학원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한국의 대학들이 가진 네임 밸류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최종 학력을 통해 자신을 정리하려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선배 누나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그 누나는 대학원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한번 놀러 와.” 그 말에 나는 끌리듯 약속을 잡았다.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왠지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반복되는 영화사 생활은 나를 지치게 했고, 나는 그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그동안 멀리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누나는 그린디자인, 친환경을 디자인하는 학과의 조교를 하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은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나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너무 바쁜 4학년을 보낸 탓일까, 그 교수님이 이 학과를 개설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누나는 언제부터 친환경에 관심이 있었을까? 나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일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나는 이 학과가 생긴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이번에 3기 신입생을 뽑는다고 했다.
“같이 의미 있는 일을 공부해 보면 어떻겠니?”
그 제안에 나는 의문을 품었다. 원래 관심 없던 분야였는데, 나와 맞을까?
의문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