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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Oct 29. 2024

현실 앞에 선 자만


나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학교를 나왔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전공과는 상관없는 것들을 자꾸만 손에 잡았다. 어느새 영상 편집에 빠졌고, 연극영화과 수업을 들으며 그들과 어울렸다. 내 디자인 감각을 눈여겨본 교수는 타과 학생들에게 허락하지 않던 연출 수업을 나에게 열어주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고, 좋은 학점을 받았다. 


그때 나는 영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내 작품은 공중파에도 방영되었다. 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조차 내 작업을 궁금해했다. 내가 만드는 모든 것이 주목받았다. 나에게 상을 준 사람은 유명한 PD였고, 그 상은 ‘문화부장관상’이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 착각에 빠졌고, 그 착각 속에서 학교 내 샐럽이 되어 있었다. 나의 자만은 나를 덮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현실이 내 눈앞에 놓였다. 나는 좋은 학교를 다녔고, 뛰어난 영상 편집과 컴퓨터 그래픽 실력을 가졌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의 경험이 내 디자인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시절에는 많은 것을 두루 잘하는 것보다 하나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넣는 원서마다 떨어졌다. 

오히려 고등학교 친구 중 웹디자인 하나에만 몰두한 친구는 너무 많은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 친구는 회사를 골라서 갈 정도였다. 지금은 유튜브나 다양한 영상 콘텐츠 채널들이 넘쳐나 내가 하던 일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영상은 소수의 채널과 광고, 아니면 영화 시장이 전부였다. ‘나는 그저 재미있는 것만 쫓아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과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4학년이 되어서야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몇 달을 방황했을까? 


그때 나는 내가 해 온 모든 것이 헛되게 느껴졌다.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돌아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어디든 들어가서 실무를 배우라”는 말이 그나마 내 마음을 흔들었다. ‘넌 세상을 몰라.’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를 질책했다. 그들 중에는 내 작품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내가 쌓아온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아버지의 공장에 불이 났고,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여러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결국 유명 개그맨 출신이 운영하는 영화사의 엔지니어로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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