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애증의 이름을 가진 회사가 있었다. 3년차, 그곳은 지금의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회사였다. 나에게 대학원에 다닐 기회를 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자연 교구를 만드는 회사였다. 대표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 자유가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고, 시장은 보이지 않았다. 싸움은 일상이었다. 그리고 야근. 그땐 내가 모든 것을 개척해야 했다. 20대 후반, 나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사무실에 있었다. 투박한 초짜 디자이너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대표는 왜 그랬을까. 나 같은 초짜에게 모든 것을 맡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무실은 늘 조용했다. 나는 조용할 수 없었다. 내 안의 열정은 쉴 틈이 없었다. 디자인이 전부였다. 나의 욕심과 철학이.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기 좋은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 그것 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부딪혔다. 사람들과, 그리고 대표와.
브랜딩, 패키지, 제품, 공간 디자인. 모두 나의 몫이었다. 외부에서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 대학원 선후배들. 그들이 흘려주는 작은 정보에 의지해 몸을 던졌다. 상업적인 디자인이 아니었으니, 내 가치는 늘 낮았다. 나의 열정은 외부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경험을 쌓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표와의 다툼도 끝이 없었다. 그가 내 불만을 채우지 못한 것에 미안해 하던 순간들도 기억난다. 1년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울한 기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회 초짜 직장인이 겪는 고민들. 경력, 미래, 이직. 불안은 내 일상을 서서히 잠식했다. 그때부터 였다. 나는 우울을 날리려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무엇은 결국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법을 몰랐다. 외부의 작은 정보들에 기대어 스스로 길을 찾아갔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나를 갇히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길을 찾는 법을 배우지 않았고, 그로 인해 더 깊은 우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