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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Nov 03. 2024

사라져가는 학과와 다시 시작된 미래에 대한 질문


대학원에 진학하고 부터 내 삶은 늘 바빴다. 첫 학기가 지나자 영화사를 떠나 자연 교구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사 팀장과의 마찰, 극복하기엔 너무 먼 거리. 결국 첫 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주간에는 회사, 야간에는 학교. 그런 일상에 적응하려는 내 몸의 노력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는 끝이 없어 보였다. 


교수님은 아무도 닦아 놓지 않은 그린디자인의 길을 열기 위해 관련 강사를 찾으러 다니셨다. 디자인을 배우는 대학원생에게 또 디자인을 가르치기보단, 넓은 세계관과 철학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교수님의 철학에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교수님은 아마존에서 ‘Green Design’ 관련 서적을 검색하고, 국내엔 거의 없던 자료를 사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함께 공부했던 선배들은 교수님과 자료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가 모은 자료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용할 정도로 치열하게 정리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학원에서 보낸 2년 반 동안, 지하철과 버스에서 한 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한 시기가 또 있었을까. 고등학교 시절보다도 더 깊고 뜨겁게 공부했다. 학과 동기들과 자주 토론했고, 공부하며 나를 불태웠다. 갖춰지지 않은 학문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과 사명감, 그것은 내 마음을 계속 뜨겁게 데웠다. 


하지만, 끝내 모든 전공생들을 무겁게 짓눌렀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문성과 진로에 대한 문제였다. 대학 마지막 해에 품었던 질문이 대학원에서도 여전히 나를 흔들어 놓았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전공을 선택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학문이 취업이나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리싸이클이나 자연 소재에 대한 기술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그린디자인으로는 경제적 가능성이 열리지 않았고, 교수님은 점차 작가로서의 방향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셨다. 학생들의 진로보다 사회적 이슈를 알리는 일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리하여 떠나는 학생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휴학하거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이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교수님의 정년 퇴임과 함께 우리 학과도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원 생활 1년이 지나면서, 나에게 다시 시작된 미래에 대한 고민. 우울한 고민이 내 안에 다시금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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