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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온다

몇 개의 태풍들이 또 내게 닥칠까.

by Boradbury Nov 25. 2024

태풍이 온다

 

    또 일 년을 무사히 잘 버텼구나. 새해 달력을 넘기며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시간을 버티기 시작한 것이. 어릴 땐 시간마다 박음질로 나아갔던 내 발걸음이 점차 공그르기로 변하다가 이젠 거의 시침질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엉성해진 만큼 뚫린 구멍으로 생의 내용물이 줄줄 샌다. 제대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곳조차 조금만 힘을 가하면 뜯어지기 일쑤다. 그러고선 천과 실을 탓한다. 과연 나이만큼 늘어난 건 다양한 핑계뿐이다. 그때, 탄식 섞인 한 마디가 들려온다. 그러게, 대비를 잘했어야지. 

    강수를 둔다. 돈을 잔뜩 들인 시간을 펼쳐 놓는다. 그 위에 화려한 계획들을 늘어놓고 본을 뜬다. 여유 없이 정확한 선을 따라 모두 잘라낸다. 느슨해진 솔기를 더 바짝 당겨 잡고, 틈새 없이 박음질한다. 마무리 부분은 서너 번 더 돌려 묶는다. 그런데 조급한 바느질에 되레 내 시간은 쭈글쭈글 울어버리고 말았다. 머리 위에 태풍이 몰아친다. 

    파북, 우딥, 스팟… 작년에 지나쳐 간 태풍들의 이름이다. 총 28개. 크기에 따라 소형에서부터 초대형까지, 풍속에 따라 약한 것에서부터 매우 강한 것까지. 그것들이 낸 사망자가 312명, 부상자가 737명, 실종자가 25명이다. 

    언제 어떻게 왔다 갔는지 모를 소형 태풍에서부터 긴 시간 날 괴롭혔던 초대형 태풍까지. 견딜 수 있을 만한 약한 것에서부터 견디기 힘들어 날 주저앉게 했던 매우 강한 것까지. 과연 몇 개나 되는 태풍들이 나를 지나쳐 갔을까.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그것들을 퀼트 하듯 이어 붙여 본다. 

    글을 쓰느라 맞았던 태풍들은 오히려 내가 참지 못할 폭염을 가시게 해 준 시원한 것이었다. 그것들이 내 손가락을 쓸고 지나가는 날이면 속이 다 후련해졌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3월 태풍은 짧지만 많은 감정의 부상자를 냈다. 아이들로 인한 태풍은 또 어땠는가. 하나인 줄 알았던 태풍이 둘, 셋으로 합쳐져 그 세력을 키울 때면 얼마나 힘들었던지. 심지어 그건 조절할 수 없는 분노를 게릴라성 폭우처럼 달고 와 내 위에 쏟아붓기도 했다. 태풍이 없던 시간 역시 태풍 전야처럼 늘 불안을 바닥에 깔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예상 경로를 벗어나거나 진로가 복잡하게 얽힐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정확하지 못했던 내 예상과 계획을 원망했다. 

    인생에도 일기예보가 있다면 다가올 태풍들을 모두 대비할 수 있을까. 우산을 준비하고,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그 예보들은 모든 예상을 비껴가곤 한다. 우산도 안 들고 나갔는데 갑자기 비를 맞아야 하는 날도 있고, 테이프를 붙였는데도 더 강력한 바람에 창문이 모조리 깨지기도 한다. 피해를 볼까 무서워 집 밖도 안 나가고 있었는데 온종일 바깥이 조용하면 억울한 심정마저 든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몰래 울고 싶을 때 만나는 태풍은 더없이 좋은 피난처가 된다. 그 속에선 목청껏 울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태풍의 눈 속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은 법이다. 

    ‘2020년 태풍’이라고 검색해 보니 아직 오지도 않은 태풍의 이름들이 ‘누리’서부터 ‘미리내’까지 서른두 개나 떠 있다. 그래프와 지도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대단한 준비성이다. 

    나도 새해를 준비해 본다. 울어버린 시간을 다시 뜯는다. 억지로 당겨 잡거나 섣불리 마무리 짓지 않기로 한다. 촘촘하지 않아도, 생의 내용물이 조금 쏟아져도, 엉성해 보여도 상관없다. 계획하지 않은 시간이 더 여유롭다는 걸 알게 되자 지난 시간이 더는 울지 않고 웃는다. 심지어 흉측할 줄 알았던 시간의 조각들이 서로 이어져 멋진 퀼트 작품이 된다.   

    새해다. 몇 개의 태풍들이 또 내게 닥칠까. 그리고 그것들엔 또 어떤 이름이 붙을까.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온다. 올 한 해도 무사히 잘 버티길 바라며 신발 끈을 야무지게 묶는다. 와라, 태풍들이여. 거친 네 숨결을 시침질 공그르기 박음질로 길들여 줄 테니. 나의 창대한 2020년을 위하여.


-2020년 미주 한국일보 신년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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